덴마크 국영 우편사 포스트노르드(PostNord)가 2025년 12월 30일을 끝으로 덴마크 내 편지 배달을 종료한다. 덴마크가 전국 단위 편지 배달을 시작한 1624년 이후 이어져 온 전통이 사실상 막을 내리는 셈이다. 다만 편지 배달은 중단하되 소포(택배) 배송은 계속 제공할 예정이다.
이러한 포스트노르드의 결정은 단지 시장 변화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덴마크의 전사회적 디지털 전환이 편지 수요를 구조적으로 축소해 왔고, 여기에 2024년부터 보편적 서비스의무가 해제되면서 공공 인프라로서의 편지망 유지 논리가 약해졌다. 결과적으로 덴마크는 유럽에서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우편 공공성 축소’ 모델을 실험하는 국가가 됐다.
한편 포스트노르드는 덴마크 내 우체통 1,500개를 철거하고 우표 환불 절차를 예고했는데, 일부 우체통이 ‘문화적 상징’으로 소비되며 판매·경매로 빠르게 소진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디지털화와 규제 전환이 겹치며 ‘편지’는 잔여 서비스가 됐다
포스트노르드는 덴마크의 편지 물량이 2000년 이후 90% 감소했고, 2024년 한 해에만 30% 추가 감소했다고 설명한다. 행정·금융·의료 등 주요 영역에서 전자 통지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서, 전자고지·온라인 뱅킹·전자서명·전자문서가 표준이 됐고 종이 편지는 빠르게 ‘특수 수단’으로 밀려났다.
여기에 2024년 1월 1일 발효된 덴마크 우편법(Postal Services Act)이 전환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법 개정으로 포스트노르드가 오랫동안 부담해 온 전국 단위 보편적 서비스의무가 해제됐고, 남는 일부 업무는 별도 조달로 전환되는 구조가 마련됐다. 공공성의 핵심이었던 ‘전국 동일 서비스’가 계약과 시장으로 분해되면서, 기업 입장에선 손익이 맞지 않는 편지망을 유지할 유인이 급격히 줄었다.
요금 체계 변화도 수요 감소를 가속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포스트노르드의 덴마크 내 편지 요금은 29크로네(약 7000원) 수준으로 상승했고, 우편법 시행 이후 가격이 크게 뛰었다는 노동계와 시민사회 비판이 이어졌다. 가격 신호가 수요 위축을 다시 부추기는 악순환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지점에서 포스트노르드는 편지 대신 소포(택배)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덴마크 소비가 온라인 쇼핑으로 이동하면서 소포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이 분야에서 ‘덴마크인이 가장 필요로 하는 서비스’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포스트노르드는 편지망을 축소하는 동시에, 소포를 중심으로 한 운영 체계를 강화해 왔다. 결국 이번 조치는 ‘편지망 폐쇄’라기보다 ‘국가 물류 사업자로서의 재정의’에 가깝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민간 단독 우편서비스 공급 구조와 선택적 보편 서비스
문제는 전환의 비용이 특정 집단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덴마크 정부는 법적으로 국민이 편지를 보낼 수단이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지만, 현실에선 민간 배송업체 DAO로 기능이 사실상 단일화되는 흐름이 나타난다. DAO는 2026년 물량을 크게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고, 이용자는 매장 접수 또는 유료 방문 수거 등 새로운 비용과 절차를 감수해야 한다.
덴마크 정부는 완전한 편지 배송 중단이 아니라 ‘선택적 보편 서비스’ 유지 구조를 설계했다. 외딴 섬 거주자, 시각장애인, 국제 편지 발송자와 관련된 일부 서비스는 정부 조달을 통해 지속 제공하고, DAO로의 전환 과정에는 재정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국내 편지 서비스가 민간 단일 사업자에 집중되는 구조가 현실화되면서, 서비스 품질·가격·노동조건을 어떻게 공공적으로 규율할지에 대한 논쟁은 더 커질 전망이다.
덴마크의 ‘마지막 편지’가 한국에 던지는 질문
덴마크 사례는 우편의 축소가 기술의 발전에 대한 필연이지만, 제도 설계와 가격 정책이 결합될 때 얼마나 급격한 ‘퇴장’이 가능해지는지를 보여준다. 이 같은 조건이 갖춰지면 디지털 고지와 전자문서의 일상화는 한국에서도 되돌리기 어렵다. 다만 그 전환 속도에 비해 오프라인 채널이 ‘잔여 서비스’로 밀려날 경우, 비용과 불편이 고령층·농어촌·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으로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이 핵심 쟁점이다.
한국에 주는 핵심 함의는 전자화가 불가피하더라도 오프라인 접근권을 최소 기준으로 남기고, 그 기준을 누가 어떤 재원으로 책임질지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전제로 농어촌 등 접근권 취약지역에 한해 편지를 필수 서비스로 지정하고, 그 외 지역은 택배와 물류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선택과 집중’ 모델을 검토할 수 있다. 편지망 유지에 드는 고정비를 줄여 적자 폭을 완화하고, 그로 확보되는 여력을 디지털 배제층과 취약계층을 위한 우편·대면 서비스 지원에 재투자하는 구조를 만드는 방식이다.
다만 덴마크 사례가 보여주듯, 보편 서비스 축소가 요금 급등과 수요 급락을 동시에 부르거나, 단일 민간사업자 의존으로 서비스 품질과 노동조건 논쟁을 키울 수 있다. 전환의 이익이 취약계층 보호로 실제 연결되도록 하려면 덴마크의 제도 전환 과정과 부작용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가격 규율·공공 조달 기준·지역망 유지 원칙을 사전에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덴마크가 ‘편지에서 택배로’ 급선회하듯, 한국도 물류 중심으로 산업 지형이 바뀌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공공 인프라 전환은 효율의 언어로만 정당화될 수 없고, 전환 과정에서 지역 우체국망의 역할, 취약계층 접근권, 노동 전환과 고용 안정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결국 덴마크의 결단은 한국에 우편을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으로 재정의할 것인지 묻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