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창 생리대’ 논란 이후 취약계층 청소년에게 생리용품을 지원하자는 사회적 요구는 예산으로 구체화됐지만, 생리대 가격 문제는 여전히 제도 밖에 머물러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2월 19일 성평등가족부 업무보고에서 “국내 생리대가 해외보다 약 39% 비싸다”는 지적을 언급하며 왜 그런지 가격 형성 배경을 따져 묻고, 관계부처가 원가-유통 구조를 점검하라고 주문하면서, 생리대는 다시 ‘복지’와 ‘시장’의 경계에서 정책 의제가 됐다.
깔창 생리대 이후 - 지원 예산의 출발점
정부의 생리용품 지원은 ‘권리’라기보다 ‘공백을 메우는 응급처치’에 가까운 방식으로 시작됐다. 2016년 취약계층 청소년이 생리대 대신 깔창이나 휴지를 사용했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현물 지원을 도입했고, 이후 국회 심의 과정에서 예산이 반영되면서 사업이 연장되는 형태로 제도가 자리 잡았다.
지원 방식은 현물에서 바우처로 옮겨왔다. 현재는 취약계층 여성청소년에게 월 단가의 바우처를 지급해 구매 선택권을 넓히는 구조가 기본 틀로 굳어졌지만, 바우처 제도가 가격 부담을 완충하더라도 가격 형성의 구조적 문제를 스스로 교정하지는 못한다는 점이 이번 논의가 출발한 지점이다.
대통령 발언의 초점 - 독과점 의심과 공정위 조사
이번 이슈의 방아쇠는 대통령의 문제 제기 자체가 ‘생필품 물가 관리’의 문법으로 생리대를 호출했다는 데 있다. 대통령은 해외 대비 가격 격차가 사실이라면 그 원인이 원가인지, 유통인지, 담합이나 시장 지배력 남용인지 규명해야 한다는 취지로 성평등가족부에도 관련 대책을 주문하는 흐름으로 연결됐다.
성평등가족부도 업무보고 과정에서 ‘여성의 필수용품’이라는 성격을 전제로 소비자가격에 불합리한 요인이 있는지 관계 부처와 함께 살펴보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즉, 복지 부처의 관점에서 취약계층 지원만을 확대하는 접근을 넘어, 가격 형성 과정 자체를 점검하는 정책 모드로 프레임이 이동하고 있다.
국내외 가격 격차가 만든 연간 지출의 크기
생리대 가격 비교는 시점과 품목 구성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지만,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흐름은 ‘한국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문제의식이다. 2017년 한국소비자원 자료에서는 국내 생리대 평균 가격이 개당 331원으로, 미국과 일본(각 181원), 프랑스(218원)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결과가 제시됐다.
최근 모니터링에서도 비슷한 방향성이 확인됐다. 이 수치는 여성환경연대가 2023년 5월 국내 생리대 462종과 11개국(일본·싱가포르·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미국) 생리대 66종의 온라인 판매가를 비교해 산출한 결과로, 전체 사이즈를 통합했을 때 국내 생리대 1개당 평균 가격이 국외보다 195.56원 더 비싸고 격차는 39.55%라는 수치가 제시됐다. 특히 오버나이트나 팬티형 등 일부 품목은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났다는 점에서, ‘기본형 제품만의 가격 문제’로 축소하기도 어렵다.
이 격차는 가계 지출로 환산될 때 더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개당 평균 가격을 331원으로 두고 기본형 생리대만 쓴다고 가정하면, 하루 4개를 4일 쓰는 비교적 적은 사용량에서는 연간 약 6만9천원 수준까지 내려가고, 하루 8개를 7일 쓰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용량에서는 연간 약 24만2천원 수준까지 올라간다.
중간값에 가까운 가정으로 하루 6개를 5일간 사용하고 28일 주기를 전제로 하면 연간 필요량은 약 391개로 계산돼 연간 지출은 약 12만9천원 수준이 된다. 팬티라이너, 오버나이트, 팬티형, 탐폰 등 품목 구성이 더해지면 실제 지출은 이 범위를 상회할 수 있으며, 취약계층 바우처가 월 단가로 설계되는 이유도 결국 이 반복 지출 구조와 맞닿아 있다.
면세와 영세율 - 세제 설계가 가격에 반영되는 방식
생리대 가격 문제는 세제 논의로 쉽게 이어진다. 한국은 생리대를 기초생활필수품으로 분류해 부가가치세 면세를 적용하고 있지만, 면세가 곧바로 소비자 체감 가격 인하로 연결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면세는 최종 판매 단계의 부가가치세를 없애는 방식이지만, 공급망에서 투입된 세금이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따라 가격 효과가 달라진다.
핵심은 ‘영세율’과 ‘면세’의 차이다. 영세율은 세율을 0%로 적용하면서도 매입 단계에서 부담한 부가가치세를 환급받을 수 있는 구조인 반면, 면세는 매출 단계의 세금이 없더라도 매입 단계의 세금 공제가 제한돼 공급망 비용에 세금이 남을 수 있다. 최종 소비자 입장에서는 모두 ‘세금 0’처럼 보이지만, 제조-유통 단계에서 발생한 세금이 원가로 남으면 최종가격 인하 폭은 제한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원재료 과세 문제가 다시 떠오른다. 최종 제품이 면세이더라도 제조에 투입되는 펄프 등 원재료에 부가가치세가 부과되는 구조가 유지되면, 제조 단계에서 부담한 세금이 원가에 잔존해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다만 면세를 영세율로 전환해 매입세액 환급 구조를 열어도, 가격이 자동으로 내려간다고 보장하기는 어렵다. 특히 유한킴벌리와 LG유니참 등 상위 업체 중심의 과점 구조가 고착돼 있거나 유통 채널이 집중돼 있는 경우, 세제 변화로 생긴 여력이 소비자 가격 인하가 아니라 마진 확대로 흡수될 가능성도 있다. 세제 개편을 논의한다면 영세율 전환이 실제로 가격 인하 여력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여력이 유통 경쟁과 가격 투명성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지까지 경쟁정책 관점에서 함께 점검해야 한다.
복지 확대와 시장 감시
생리대 가격이 오를수록 취약계층 바우처의 단가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요구는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바우처 확대가 곧바로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더라도, 가격이 높은 상태가 구조적으로 고착돼 있다면 공공재정이 결과적으로 특정 기업의 매출을 뒷받침하는 형태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책의 우선순위는 ‘지원 확대’와 ‘시장 구조 점검’을 분리해 생각하기보다, 순서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데 있어야 한다. 정부는 공정위 중심으로 가격 격차의 원인이 원가인지, 유통인지, 시장지배력 남용이나 담합 등 경쟁 제한 행위인지부터 적극적으로 확인해야 하며, 위법 또는 경쟁 제한이 확인될 경우 시정조치와 제도 개선을 선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이후에야 바우처 단가 인상이나 대상 확대 같은 복지 확충이 ‘가격 상승을 보전하는 재정’이 아니라 ‘필수재 접근성을 보장하는 재정’으로 기능할 수 있다. 생리대 정책은 결국 복지의 언어만으로도, 공정위의 조사만으로도 완결되지 않으며, 시장 감시를 통해 가격의 비정상 요인을 걷어낸 뒤 지원을 넓히는 방식이 현실적인 결합 모델로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