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 히트펌프 보급-‘입소문 리스크’ 관리가 관건

성공 사례가 먼저다-조건 맞는 집부터 보급해 긍정 경험을 확산해야

 

정부가 최근 발표한 히트펌프 보급 사업이 단독주택 난방의 에너지 전환을 겨냥한 정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스관 공급이 어려운 지역의 단독주택 가운데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갖춘 주택을 우선 대상으로 삼은 것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 기반 난방 체계로 이동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나무에서 연탄, 기름, LNG, LPG로 난방 연료가 바뀌어 온 흐름을 고려하면, 이번 사업은 난방 패러다임 전환을 제도적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재생에너지 기반 난방 전환의 ‘설계도’

 

히트펌프의 개념은 전기를 이용해 외부의 공기-지열-수열을 열원으로 활용하는 고효율 난방 시스템이다. 기존 화석연료 보일러와 비교해 에너지 효율이 높고 온실가스 배출이 적다는 점이 핵심 강점으로 꼽힌다. 정부가 초기 단계에서 태양광 설비가 이미 설치된 단독주택에 초점을 맞춘 것은, 전력 생산과 소비의 구조를 동시에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방식의 정책 실험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장기적으로는 주택 전반은 물론, 열 수요가 큰 산업 부문으로까지 확산 가능성을 모색하는 구상도 함께 제시되고 있다. 다만 정책이 ‘확산’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기술 자체의 장점만으로는 부족하고, 현장의 참여와 만족도를 끌어올릴 행정 설계가 먼저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동시에 제기된다.


지방비 매칭 구조가 만드는 초기 확산의 벽

 

현장 확산의 첫 번째 변수는 지방자치단체의 호응도다. 국비 지원에 더해 도비-시비가 매칭되는 구조라면,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에 지방정부가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드러날 수 있다. 특히 지역별 재정 여건과 에너지 인프라 조건이 상이한 상황에서, 동일한 설계가 동일한 참여율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경남 밀양시의 한 관계자는 “올해 이 사업과 관련해 12월 말 사업설명회 이후 예산편성 여부 및 편성액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국비-도비-시비 지원이 이뤄지더라도 설치를 원하는 주민의 자부담 비율이 약 30% 수준, 금액으로는 500만 원 내외가 될 가능성이 있어 초기 참여의 진입장벽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독주택 거주 비중이 높은 농촌-중소도시 지역일수록 이 부담은 더 민감한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입소문 리스크’와 성능 체감의 정치성

 

더 큰 과제는 초기 경험의 관리다. 히트펌프는 장기적으로 친환경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기술로 평가되지만, 초반에 부정적 경험이 확산되면 정책 전체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이미 히트펌프를 앞서 도입한 국가들에서도 ‘초기 만족도’가 확산 속도를 좌우하는 장면이 일부 드러난 바 있다는 점에서, 초기 설계는 정책 홍보보다 더 중요한 행정 변수로 부상한다.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영국의 가스보일러 설치 업자로 보이는 인물이 히트펌프를 공개적으로 폄하하는 사례를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스칸디나비아처럼 단열이 잘된 주택이 아니라, 우풍이 심하고 단열이 취약한 주택에서는 설치비만 늘고 난방 성능 개선 효과는 미미하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반론이 존재하더라도, 단열 수준이 낮은 주택에서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 제기 자체는 정책 설계에서 회피하기 어렵다.


단열 성능과의 결합이 현실적 해법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보급 대상을 더 선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정 수준 이상의 단열이 확보된 주택에 우선 보급하면 사용자 만족도가 높아지고, 그 경험이 긍정적으로 확산되면서 사업 전반의 호응도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는 논리다.

정부가 주택 단열 성능 개선을 위한 별도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초기 단계에서는 ‘가스관 미공급 지역-태양광 설비 보유 단독주택’이라는 기존 조건에 더해 ‘일정 수준 이상의 단열 성능’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방식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단열 개선 공사와 히트펌프 설치를 ‘콤보 방식’으로 연계 지원하는 설계 역시, 초기 실패 확률을 낮추는 방향의 정책 옵션으로 거론된다.


확산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순서’

 

히트펌프 보급은 고효율-저탄소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정책이다.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난방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기화 기반 에너지 전환의 핵심 고리로도 평가된다. 다만 제도의 성공 여부는 기술 자체보다 어떤 주택에, 어떤 순서로, 얼마나 세심하게 적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해외 도입 경험을 면밀히 검토하고, 한국의 주택 구조와 지역별 특수성을 반영한 정교한 행정이 뒷받침된다면, 이번 히트펌프 보급 사업은 단순한 시범정책을 넘어 단독주택 난방 전환의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