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빈 의자’가 드러낸 출석 강제의 사각지대

쿠팡 김범석 불출석 논란이 던진 질문, 국감법 무엇을 보완해야 하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국회가 책임 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열었지만, 쿠팡의 실질적 지배자로 거론되는 김범석 의장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국회 호출’이 ‘출석’으로 연결되지 않는 현실이 다시 표면화됐다. 핵심 증인이 ‘해외 체류’나 ‘업무 일정’을 이유로 빠지는 순간, 국정감시는 절차만 남고 실체는 비어 버린다.

이 문제가 단발성 해프닝이 아니라는 점은 출석률 통계가 먼저 말해준다. KBS는 2018년 보도에서 2009년부터 2017년까지 9년간 국정감사 일반증인 2,478명(중복 포함 2,633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출석률이 80.5%였고 514건의 불출석이 발생했다고 정리했다. 사장 대신 임원이 출석하는 대리 출석도 불출석으로 본 기준을 감안하면, ‘호출은 가능하지만 출석은 확정이 아니다’라는 현실이 제도 밖에서 관행화돼 왔다는 뜻이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2조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출석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역으로 보면 불출석률 19.5%라는 숫자는 법 규정과 집행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이번 쿠팡 사례는 그 간극이 ‘글로벌 체류’라는 사유를 만나면 어떻게 손쉽게 확대되는지를 보여주며, 증인 출석 강제 수단이 법에 존재하더라도 실제로 작동하는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끌어올렸다.


해외 체류가 관행적 면책이 되는 순간

 

국회는 국회증언감정법을 통해 증인과 감정인의 출석과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불응 시 형사처벌 조항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대기업 총수, 대형 플랫폼과 다국적 구조를 가진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국회에 나오지 않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법의 존재’와 ‘집행의 실효성’ 사이의 간극이 정책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해외 체류를 이유로 한 증인 회피가 국정감사 현장에서 반복-누적되며, 제도의 허점을 파고드는 ‘최악의 꼼수’로 진화해 왔다는 데 있다. 국회가 증인을 부르는 목적은 특정 사안의 경위를 확인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점검해 제도 개선으로 연결하기 위한 것인데, 실질적 결정권자가 출석하지 않으면 그 과정 자체가 사실상 방해받고 설명 책임도 분산되며, 위기 대응은 실무진의 ‘선의’에 기대는 구조로 굳어지기 쉽다.


한국 국회의 강제 장치 - 동행명령, 형사고발

 

국회가 쓸 수 있는 수단은 단계적으로 설계돼 있다. 출발점은 증언감정법에 따른 ‘출석요구서’ 송달로, 원칙적으로 일정과 장소, 신문 요지, 불응 시 제재가 적힌 요구서가 사전에 전달돼야 한다. 그럼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이 발생하면, 국정감사·국정조사 위원회는 의결을 거쳐 동행명령을 발부할 수 있다.

문제는 청문회가 국정감사·국정조사와 달리 동행명령을 쓸 수 없는 구조라는 점이다. 청문회에서 불출석이 발생하면 국회가 즉시 동원할 수 있는 강제수단은 사실상 형사고발뿐이고, 이마저도 수사기관의 판단과 처리 속도에 좌우된다. 다만 동행명령 역시 ‘임의 동행’ 방식으로 집행되고 국내 관할을 전제로 하는 만큼, 해외 체류 등 물리적 관할 밖 증인에게는 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 결국 현장 집행력의 공백이 ‘해외 체류’와 결합할 때, 출석 요구는 쉽게 무력화되고 국정감시는 사후 제재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 한국 제도의 핵심 취약점으로 남는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원격출석 제도가 꾸준히 논의돼 왔고, 2024년에는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제도화가 현실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당시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로 재표결에 부쳐졌고, 끝내 부결되면서 개정안은 확정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해외 체류를 이유로 한 불출석 ‘꼼수’를 차단하려는 제도 보완 차원에서 영상 증언 구상이 추진됐지만, 개정안이 확정되지 못하면서 현행 제도 안으로 편입되지는 못한 채 논의의 영역에 남았다.

이에 추후 원격출석제도를 도입시 신원 확인, 통역과 기록의 동일성, 자료 제시 방식, 증언 거부와 지연 전술에 대한 제재 등 운영 설계가 함께 갖춰지지 않으면, 원격출석은 제도 바깥의 권고 수준에 머물기 쉽다.

또한, 원격출석을 제도화하더라도 원칙은 대면 출석으로 두고, 원격은 불가피한 사유가 입증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으로 설계돼야 실효성과 정당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다.

이와는 별개로 최근에는 지속적으로 불출석한 외국인 증인에게 한국에 입국 제한을 연동하는 방안까지 정치권에서 거론됐다. 이는 해외 체류자에 대한 직접 강제의 한계를 ‘이동 제한’이라는 간접 수단으로 보완하려는 접근이지만, 대상의 범위, 절차적 통제, 외교적 파장, 국제인권 기준과의 정합성을 함께 검토해야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생긴다.


미국의회의 모독죄 - 입법부 권한이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

 

미국 의회는 소환장 기반 조사에서 불응이 발생하면 ‘모독죄(Contempt of Congress)’ 절차를 통해 압박을 강화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의회가 자체적으로 구금까지 할 수 있는 내재적 모독죄 처분권을 보유해 왔고, 실제로 집행한 전례도 있으며, 현대에는 형사 모독죄 절차와 민사 집행을 조합해 실효성을 확보해 왔다. 중요한 점은 단일한 강제 수단이 아니라, 의회가 상황과 상대에 따라 경로를 선택해 집행을 밀어붙일 수 있는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다만 미국도 해외에 있는 외국인을 직접 끌어오기 어렵다는 현실은 동일하다. 미국의 강제력이 강하게 보이는 이유는 국내 관할 내에서의 집행 수단이 촘촘하고, 정치적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응하지 않으면 더 큰 비용이 따른다’는 선례가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쟁점은 해외 체류 그 자체가 아니라, 불응이 반복될 때 제재가 누적되는 시스템의 설계다.


제도 핵심 - ‘원칙’보다 ‘집행’

 

한국의 과제는 법 조항을 더 늘리는 것보다, 이미 있는 수단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집행 프로세스를 정교화하는 데 있다. 국회증언감정법은 정당한 사유 없는 불출석 등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지만, 실무에서는 벌금형 중심으로 마무리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법정형의 ‘무게’가 현장에서 체감되는 ‘비용’으로 곧장 전환되지 않으면, 불출석은 위험이 아니라 계산 가능한 선택지로 남는다.

따라서 고발 이후 수사 착수와 처리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원격출석은 원칙적 대면 출석을 보완하는 예외 절차로 설계하되 요건과 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해야 한다. 출석 곤란 사유의 소명과 사전 심사, 신원 확인과 선서, 증언 기록의 동일성, 자료 제시와 반대신문의 방식, 불응과 지연 전술에 대한 제재까지 기준을 명문화하지 않으면 원격출석은 오히려 불출석을 합리화하는 통로로 작동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기업 지배구조상 실제 의사결정권자가 책임 회피를 반복할 때 국내 법인이 어떤 방식으로 설명 책임을 대행하고 부담할지까지 연결해야 한다.

또한 국회는 출석 강제 수단을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라 상시적 거버넌스 도구로 운용해야 한다. 출석 요구의 정당성과 필요성, 개인정보·영업비밀 보호와의 균형, 증인 인권과 절차적 통제 장치가 함께 설계될 때, 강제력 강화는 ‘정치적 공격’이 아니라 제도 개선으로 읽힌다.


글로벌 시대의 청문회, 제도는 ‘현실’과 ‘악용’을 동시에 봐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제도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불응이 남기는 비용’의 크기와 확실성에서 갈린다. 문제는 글로벌 경영이 일상화된 현실에 비해, 국회의 증언 확보 장치가 여전히 국내 관할과 대면 출석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결정권자가 국경 밖에 있을 때 제도의 강제력이 급격히 약해지는 구조가 반복되면, 국정감시는 절차적 형식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

이 틈은 곧장 악용의 공간이 된다. ‘해외 체류’가 사실상 면책 신호로 굳어지는 순간,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출석 책임을 회피하고 국내 법인과 실무진이 설명 책임을 떠안는 구조가 고착된다. 불출석이 초래하는 비용이 낮고 예측 가능하면, 책임의 공백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조직의 전략이 된다.

따라서 해법은 국내 제도 보완과 국제 협력을 함께 묶어야 한다. 원격출석은 대면 출석 원칙을 보완하는 예외 절차로 엄격히 설계하되, 불응 시 제재가 실제로 누적되는 집행 경로를 분명히 해야 한다. 동시에 해외 소재 증인과 자료를 둘러싼 공백을 줄이기 위해, 사법·규제 당국 간 정보 교환과 절차 협력, 국가 간 공조 채널을 제도적으로 정비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결국 ‘빈 의자’ 문제는 국회만의 사안이 아니라, 국경을 넘는 경제 현실에 국가의 거버넌스가 어떻게 따라붙을 것인가의 시험대다. 글로벌 사회에서 제도가 현실을 뒤따르지 못하는 순간, 그 간극은 누군가의 책임 회피로 메워진다. 이제 기준은 선언이 아니라 ‘작동’이며, 작동의 범위는 국내를 넘어 국제 협력까지 확장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