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주도 '12.3 내란' 사건 재판이 막바지 결심 공판을 앞두고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피고인석에 앉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 측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법리적으로는 "나는 전두환이 아닌 최규하"라는 논리를, 절차적으로는 '무제한 서증조사'라는 지연 전술을 동시에 들고나왔다.
더 큰 문제는 이를 통제해야 할 재판부가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지는 이번 재판의 쟁점인 변호인단의 '역사 왜곡' 논리와, 이를 제재하지 않은 재판부의 '소극적 지휘' 논란을 정리하였다.
주장 1. "나는 반란수괴가 아니다"… '최규하 모델'의 등장
윤석열 전 대통령 변호인단의 최후 변론 전략은 교묘했다. 그들은 1997년 대법원의 12.12 및 5.18 재판 판례를 역이용했다. 당시 법원은 전두환·노태우 씨에게는 내란죄를 적용했지만, 계엄을 재가했던 최규하 전 대통령은 기소하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이를 근거로 "윤 전 대통령은 헌법상 계엄 선포 권한을 가진 통치권자로서, 당시 최규하 대통령과 같은 지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즉, 국군통수권자의 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인 '통치행위'이므로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설령 절차적 하자가 있더라도 내란죄의 주체(반란수괴)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심지어 변호인단은 재판정에서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처럼, 훗날 역사가 윤 전 대통령의 결단을 재평가할 것"이라며 현재의 재판을 '정치 보복' 프레임으로 몰고 갔다.
[팩트체크] 1. 왜 '최규하 비유'는 허구인가
법조계와 역사학계는 윤석열 측의 주장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는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한다. 두 대통령의 상황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피동적 도구 vs 능동적 주체: 1979년의 최규하 전 대통령은 신군부의 물리적 위협 속에서 사후 재가만 강요당한 '피해자'이자 '도구'에 가까웠다. 반면, 2024년의 윤석열 전 대통령은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김용현 전 국방장관 등과 공모하여 비상계엄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친위 쿠데타(Self-Coup): 특검 수사 결과와 헌법재판소는 윤 전 대통령이 곽종근 당시 특전사령관에게 국회의사당 진입과 의원 체포를 직접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헌법 기관인 국회를 무력화하여 권력을 유지하려던 전형적인 '친위 쿠데타'로, 신군부의 압박에 밀린 최 전 대통령 사례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윤석열·김용현 변호인단의 '침대축구' 공조
내용 면에서 '최규하 프레임'을 짰다면, 절차 면에서는 사실상 윤석열·김용현 양측 변호인단이 합심한 '서증조사 지연'꼼수가 등장했다. 지난 공판들에서 김용현 전 장관 측뿐만 아니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 역시 검찰이 제출한 증거서류를 조사하는 '서증조사' 과정에서 노골적인 시간 끌기 양상을 보였다.
서증조사란?
재판부가 검찰이 제출한 수사 기록, 진술 조서 등 서류 증거의 내용을 확인하고, 피고인 측의 의견을 듣는 절차다.
통상적으로 방대한 서류 증거는 "변호인이 미리 검토했으므로 요지만 확인하고 넘어가겠다"거나 "서면으로 갈음한다"고 하여 30분~1시간 내에 끝내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윤석열·김용현 변호인단은 서로 바통을 터치하듯 릴레이 낭독하였다. 특히 이미 증인신문에서 다뤄진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하고, 사건의 쟁점과 무관하거나 이미 했던 주장을 반복하며 10시간 가까이 재판을 공전시켰다.
이는 명백한 '조직적 재판 지연 전술(침대축구)'이며, 2월 법관 정기인사로 재판부를 교체하거나 구속 만료를 노린 전략이라는 법조계의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간 배분만 잘해달라"… 읍소로 끝난 소송지휘권
지귀연 재판장은 지난 기일 변호인단을 향해 "프로답지 못하다"며 강하게 호통을 쳤다. 그러나 정작 결심 공판을 앞둔 이번 기일에서도 재판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여전히 변호인단에게 "마지막 재판이니 시간 배분만 잘해달라"고 요청하는 수준에 그쳤다. 명백한 소송 지연 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는커녕, 사실상 협조를 구하는 모양새다. 이에 마지막 결심공판에서도 11시간만에 서증조사가 끝났다. 이를 두고 법조계 내부, 특히 동료 판사들 사이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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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해진 소송지휘권: 형사소송법상 재판장은 소송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불필요한 변론을 제한하거나 중지시킬 강력한 '소송지휘권'을 가지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재판과 무관한 내용을 10시간씩 읊는데도 '시간 좀 잘 써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재판장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린 직무 유기"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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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없는 공허한 경고: 재판부는 규칙을 어기고 고의로 지연 전술을 펴는 변호인에게 발언 금지, 퇴정 명령, 과태료 부과(감치) 등 실질적인 카드를 전혀 꺼내 들지 않았다. 말로만 "문제 있다"고 할 뿐, 행동으로는 방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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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선례 남겼다":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상급심에서의 파기환송을 지나치게 우려하여 피고인 측에 질질 끌려다닌 꼴"이라며 "향후 다른 재판에서도 '떼쓰고 버티면 통한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결국 "시간 배분 부탁"이라는 재판부의 안일하고 소극적인 태도가 윤석열·김용현 측의 '침대축구'를 사실상 용인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헌법과 형법은 '셀프 쿠데타'를 용인하지 않는다
결심 공판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재판은 단순히 전직 대통령 개인에 대한 단죄를 넘어, 1996년 전두환·노태우 재판 이후 30년 만에 대한민국 헌법의 생명력과 사법 정의가 살아있는지를 확인하는 역사적 시험대다. 당시 사법부가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된다'는 원칙을 세워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졌다면, 이번 재판은 선출된 권력이 스스로 헌법을 파괴하는 '셀프 쿠데타'조차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천명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피고인 측이 내세운 '최규하 모델'이라는 궤변과 조직적인 '지연 전술', 그리고 이를 제어하지 못한 재판부의 '무기력함'은 재판 과정을 혼탁하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체적 진실은 가려질 수 없다. 이러한 꼼수가 법정에서 통용된다면, 이는 향후 권력형 범죄자들이 법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2026년 1월, 국민들은 사법부가 외부의 정치적 셈법이나 절차적 핑계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라 엄중한 심판을 내리기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이제 사법부가 중심을 잡고 헌법 파괴 행위를 단죄하여, 무너진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는 정의로운 결단을 내릴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