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오늘 전국법관회의를 열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제’ 등에 대한 반발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면서, 국회와 사법부의 충돌이 정면으로 드러났다. 법제사법위원회는 헌법재판소법 개정 대안을 처리하며 ‘확정판결’에 한정하고 ‘헌재 결정에 반하는 취지’ ‘적법절차 위반’ ‘명백한 기본권 침해’ 같은 제한 사유를 두는 방식으로 제도를 구성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대법원이 최고법원인 이상 사실상 4심제가 된다”는 프레임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 프레임은 헌법의 권한 구조를 단선적으로 읽는 데서 출발하며, 그 자체로 심각한 논리적 비약을 포함한다. 이 글은 법원 측 주장의 고리를 하나씩 분해해 반박한다.
한눈에 보는 쟁점: 독자가 가장 헷갈리는 3가지
이 논쟁이 자꾸 꼬이는 이유는 ‘재판’ ‘최고법원’ ‘최종심’ 같은 단어가 서로 다른 제도를 한 단어로 덮기 때문이다. 핵심만 칼같이 정리하면 다음 세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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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대법원 위의 법원’이 아니다. 헌재는 대법원·각급법원으로 이어지는 법원 체계 밖에 있는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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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소원은 ‘한 번 더 재판해 달라’는 상소가 아니다. 증거를 다시 보고 사실을 다시 따지는 절차가 아니라, 재판이 헌법상 최소 기준(기본권·적법절차)을 깨뜨렸는지만 묻는 헌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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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판결 존중은 원칙이지만, ‘예외를 0으로 만들라’는 헌법 명령은 아니다. 문제는 예외를 둘 수 있느냐가 아니라, 예외의 문턱을 얼마나 높이고 필터를 얼마나 촘촘히 두느냐다.
용어를 분리하면 논리가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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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2심·3심): 법원 안에서 ‘사실·법률 적용’의 잘못을 다시 다투는 절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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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심(헌법소원): 국가작용이 기본권을 침해했는지, 절차가 헌법상 최소선을 지켰는지 따지는 절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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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판결: 일반 상소(항소·상고)로는 더 이상 다툴 수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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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확정판결의 예외적 교정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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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소원: ‘오심 시정’이 아니라 ‘헌법 위반 교정’에 초점을 둔 예외적 통제 장치로 설계하자는 구상이다.
법사위 대안의 구조,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전면 허용하지 않았다
법사위 대안은 현행 헌재법이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해 온 ‘법원의 재판’을 일정 범위에서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첫째, 대상 재판을 ‘확정된 재판’으로 한정했다. 둘째, 청구 사유를 넓게 열어두지 않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는 취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경우’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기본권 침해가 명백한 경우’로 제한했다. 셋째,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에만 청구하도록 기간을 짧게 잡았다. 넷째, 지정재판부가 요건 불충족이 명백하면 전원일치로 각하할 수 있도록 해 초기 필터를 두었다. 다섯째, 인용 시에는 해당 재판을 취소하고 법원이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다시 재판하도록 하는 구제 방식을 명시했다.
이 설계는 ‘모든 사건을 한 번 더’가 아니라 ‘헌법적으로 문제 되는 확정판결을 예외적으로’라는 방향을 전제로 하고 있다.
대법원 주장, ‘최고법원=최종심’과 ‘4심제’ 우려
대법원 측 논리는 대체로 세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 논리는 헌법 제101조 제2항을 근거로 한다. 헌법이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된다”라고 규정한 만큼, 법원의 재판은 대법원에서 종국적으로 확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둘째 논리는 제도 효과를 강조한다. 확정판결을 헌재가 취소할 수 있으면 실질적으로 상급심이 하나 더 생기는 것과 같고, 사건이 헌재로 몰려 ‘소송지옥’이 생긴다는 우려다.
셋째 논리는 권력분립과 사법권 독립을 든다. 법원의 재판을 다른 기관이 취소하는 구조는 사법권의 본질을 침해한다는 문제 제기다.
이 논리는 법원에 대한 논쟁을 ‘권한 침해’와 ‘4심제’라는 두 문장으로 압축해 말한다. 그러나 이 프레임은 곧바로 현실의 질문과 맞부딪친다. 사법부를 둘러싼 신뢰의 균열이 누적된 상황에서, 정치권은 ‘통제 장치’라는 언어로 제도 개편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재판소원제는 헌법 권한 구조를 둘러싼 법리 논쟁과 신뢰 위기 속 제도 개편 요구가 한 지점에서 충돌한 사안이 됐다.
최근 수년간 대법원과 각급법원을 둘러싼 잇단 논란 속에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크게 흔들렸고, 법원 조직이 문제를 충분히 진단·시정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누적돼 왔다. 이런 배경에서 여당(정치권)은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재판소원제 같은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이를 ‘국민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정당화한다. 따라서 법원이 ‘권한 침해’를 전면에 세워 반발할수록, 역설적으로 “왜 법원이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이런 배경을 깔고, 이제부터는 법원이 내세운 ‘최고법원=최종심’과 ‘4심제’ 논리를 조항과 기능으로 분해해 하나씩 반박한다.
반박 1, 제101조의 ‘최고법원’은 ‘법원 내부 위계’ 규정
헌법 제101조 제2항은 대법원이 ‘법원’ 체계 내부에서 정점임을 선언한다. 그러나 이 조항은 어디까지나 법원(사법부) 조직의 위계를 정한 규정일 뿐, 헌법재판소가 행사하는 헌법재판권을 ‘법원 체계 안’으로 편입시키거나, 헌재가 담당하는 헌법심을 배제하는 조항은 아니다.
헌법은 제111조에서 헌법재판소의 관장사항을 별도의 조문으로 열거함으로써, 헌재가 대법원 아래의 ‘각급법원’도, 대법원 위의 ‘상급법원’도 아닌 독립된 헌법기관임을 전제한다. 쉽게 말해 헌재는 ‘대법원 위’가 아니라 법원 체계 ‘밖’에 있다. ‘법원 경기장’에서 최종 판정은 대법원이 내리지만, 그 경기장 자체가 헌법의 최소 규칙을 어겼는지 따지는 심판은 헌재라는 다른 트랙에 놓여 있다. 다시 말해 헌재는 법원 체계 밖에서 헌법 위반과 기본권 침해 여부를 심사하는 기관이므로, 제101조를 근거로 ‘재판 관련 헌법심’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해석은 제111조의 권한 체계와 충돌한다.
반박 2, 제111조 제1항 제5호는 ‘금지’가 아니라 ‘설계의 위임’
헌법 제111조 제1항 제5호는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을 헌재의 권한으로 둔다. 핵심 표현은 “법률이 정하는”이다. 헌법은 헌법소원의 구체적 범위와 요건을 입법으로 정하도록 열어둔다. 이 문언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헌법소원은 헌법이 예정한 권한이므로, 입법자가 제도를 구체화하는 것은 헌법이 금지한 영역이 아니라 헌법이 위임한 영역이다.
둘째, 입법은 무제한 재량이 아니다. ‘법률이 정한다’는 말은 헌법의 다른 조항들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에서 설계하라는 뜻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재판소원은 ‘헌법이 금지했는가’가 아니라 ‘헌법과 조화되는 설계인가’의 문제로 이동한다.
반박 3, 헌법은 이미 ‘재판과 헌법심의 교차’를 예정함
헌법 제107조 제1항은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법원은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그 심판에 의하여 재판한다”라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두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첫째, 헌법은 법원의 재판이 헌법재판과 완전히 분리된 폐쇄 시스템이라고 보지 않는다.
둘째, 법원 재판은 헌법적 통제와 무관할 수 없다는 전제를 갖는다. 위헌법률심판에서 법원은 헌재 판단을 받아들여 재판을 한다.
따라서 ‘재판은 어떤 형태로도 헌재가 할 수 없다’는 전면적 차단 논리는 헌법 제107조의 구조와 잘 맞지 않는다.
반박 4, ‘4심제’는 기능을 혼동한 주장이다
‘4심제’라는 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헌재가 대법원처럼 증거를 다시 보고, 사실을 다시 인정하고, 법률을 다시 적용해 결론을 뒤집는 구조여야 한다. 그러나 재판소원이 겨냥하는 것은 그런 재심리(재상고)가 아니라 헌법상 최소 기준의 위반 여부다. 일반인이 헷갈리지 않도록 ‘헌재가 하는 일/하지 않는 일’을 분리하면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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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가 하지 않는 것: 증거 채택·신빙성 판단, 사실인정의 뒤집기, 단순한 법률해석의 시비, 형량·손해배상액의 재산정 같은 ‘사건의 당부’ 재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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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가 보는 것: 재판 과정과 결과가 적법절차·평등·표현의 자유·방어권 등 기본권의 최소선을 명백히 침해했는지, 그리고 헌재 결정의 기속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지
대법원이 헌법과 법률을 해석·적용해 종국판단을 내리는 기능은 그대로 유지된다. 헌재가 관여한다면 그것은 상급심의 또 다른 법률심이 아니라, 법원 체계 밖에서 작동하는 헌법심이다.
법사위 대안이 확정판결, 제한사유, 30일, 지정재판부 각하 같은 장치를 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도가 헌법심으로만 작동하려면 ‘사실상 재상고’ 통로가 되지 않도록 문턱을 높여야 하고, 대안은 그 방향을 전제로 한다.
반박 5, 법적 안정성은 ‘원칙’이지 ‘절대 규칙’이 아니다
대법원 논리의 힘은 ‘확정판결은 끝나야 한다’는 상식에서 나온다. 다만 헌법적 논증에서 중요한 것은 ‘끝내야 한다’가 얼마나 절대적인가다.
확정판결 존중은 분명히 원칙이다. 그러나 ‘종국성’은 헌법이 절대불변의 규칙으로 명령한 개념이 아니라, 정당한 절차와 기본권 보장이라는 다른 헌법 가치와 충돌할 때 조정되는 원칙이다. 우리 법질서가 확정판결을 전제로 하면서도 재심 같은 예외적 구제절차를 두는 이유도, ‘한 번 더 해보자’가 아니라 중대한 절차위반이나 권리침해가 남았을 때는 끝내는 것보다 바로잡는 것이 더 무겁다는 전제 때문이다.
여기서 재판소원 논쟁의 질문은 단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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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확정판결을 건드릴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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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원칙적으로는 안 된다. 다만 ‘헌법상 최소선’이 무너진 극히 예외적 경우라면, 예외를 둘 수 있다.”
따라서 설득의 핵심은 추상적 경고(‘종국성이 무너진다’)가 아니라, 예외의 범위를 얼마나 좁히는가다. 법사위 대안처럼 ‘확정판결’로 대상을 제한하고, ‘헌재 결정과 정면 충돌’ ‘적법절차 위반’ ‘명백한 기본권 침해’ 같은 사유로 문을 좁히며, 기간을 30일로 짧게 두고, 지정재판부 단계에서 걸러내는 필터를 강하게 세우면 ‘종국성 파괴’ 우려는 설계의 문제로 전환된다.
결국 대법원이 말하는 ‘최종심’은 금지 조항이 아니라, 입법자가 지켜야 할 조화의 기준이다. ‘예외를 둘 수 없냐’가 아니라 ‘예외가 상소로 변질되지 않게 할 장치가 있냐’가 진짜 쟁점이다.
‘대법원 최종심’은 금지 조항이 아니라 조화의 기준이다
대법원의 ‘최고법원’ 지위는 헌법이 보장한다. 그러나 그 문구가 곧바로 “법원 확정판결은 헌법적 통제에서 완전히 면제된다”는 뜻으로 확장되지는 않는다. 헌법은 한편으로 제101조에서 법원 체계의 정점을 대법원으로 두고, 다른 한편으로 제111조에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포함한 헌법재판권을 부여해 법원 체계 밖의 헌법심 트랙을 함께 설계했다.
따라서 재판소원제의 쟁점은 ‘할 수 있냐 없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소로 변질되지 않게 할 것이냐’로 정리된다. 확정판결만 대상으로 삼고, 헌재 결정과의 정면 충돌·중대한 적법절차 위반·명백한 기본권 침해 같은 헌법적 사유로 문을 좁히며, 짧은 제소기간과 강한 사전 선별로 걸러내는 설계가 전제된다면 ‘4심제’ 주장은 원천 금지의 논거가 아니라 설계 점검의 기준으로 기능한다.
이 논쟁은 결국 사법부가 스스로 권위와 도덕성을 훼손하는 논란을 반복해 국민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비판이 누적된 상황에서, 정치권은 ‘통제 장치’라는 형태로 입법을 추진하였다. 이에 대해 법원이 ‘권한 침해’라는 구호만으로 방어할수록, 오히려 법원이 그동안 먼저 보여야 했던 성찰과 자정의 책임은 더 선명해지고, 그 결과 국회가 법원의 ‘강제적 성찰’을 제도화하는 구조를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낸 셈이 된다.
결국 오늘의 충돌은 두 과제를 동시에 요구한다. 국회는 재판소원이 헌법심을 넘어 ‘재상고 통로’로 변질되지 않도록 문턱과 필터를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 대법원과 각급법원은 ‘최종심’이라는 권위에 기대기보다, 왜 국민이 통제를 요구하게 됐는지부터 돌아보고 신뢰 회복을 위한 자정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