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캐나다의 제2 항공사 웨스트젯(WestJet)이 쏘아 올린 '1인치'의 공방이 전 세계 항공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웨스트젯이 일부 보잉 737 기종의 이코노미석 좌석 간격(Pitch)을 기존 30인치대에서 28인치(약 71cm)로 줄이고 좌석 한 줄을 더 욱여넣자, 승객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소셜미디어에는 노부부의 무릎이 앞 좌석에 꽉 낀 채 옴짝달싹 못 하는 영상이 퍼져나갔고, "양계장 닭장보다 좁다", "비상시엔 죽음의 덫이 될 것"이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서비스 불만 제기가 아니다. 지난 30여 년간 항공사들이 수익을 위해 야금야금 줄여온 승객의 공간이 이제는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1970년대 평균 35인치(약 89cm)였던 좌석 간격은 28인치까지 줄어든 반면, 현대인의 체격은 오히려 커졌다. 미 육군 데이터에 따르면 남성의 97.6%가 현재의 일반적인 좌석 너비보다 넓은 어깨를 가지고 있다.
본지는 딥리서치를 통해 웨스트젯 사태로 다시 불거진 좌석 축소의 안전·보건 위협과, 이를 규제하려는 각국의 시도가 왜 번번이 국제법의 벽에 부딪히는지 심층 분석했다.
90초의 미스터리: 좁은 좌석에서 탈출이 가능한가?
항공 규제의 핵심은 '비상 상황 시 90초 이내 전원 탈출' 가능 여부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현재의 28인치 좌석에서도 이 기준을 충족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미 국립과학아카데미(NASEM)와 감사관실(OIG)은 FAA의 인증 테스트가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FAA의 시뮬레이션은 주로 60세 미만의 건강한 성인만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비만 승객이나 장애인, 유아 동반 승객 등 '탈출 취약 계층'은 배제되었다. 실제 사고 현장의 패닉 상태나 기내 수하물을 챙기려는 돌발 행동도 고려되지 않았다. 이에 2024년 통과된 'FAA 재승인법'은 FAA에게 인구통계학적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테스트 기준을 수립할 것을 명령했다. 이는 좌석 크기가 단순한 서비스 문제가 아닌 '안전'의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의 공포와 인과관계의 모순
좁은 좌석은 승객의 건강도 위협한다. 장시간 부동 자세로 인해 발생하는 심부정맥 혈전증(DVT), 일명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 대표적이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90cm 이상의 장신이나 160cm 이하의 단신 승객이 좌석 모서리에 오금(무릎 뒤편)이 눌려 혈류가 차단될 위험이 높다고 경고한다.
특히 이 문제는 비행 시간에 따라 그 위험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1~2시간 내외의 단거리 비행에서는 좁은 좌석이 단순한 '불편함'에 그칠 수 있다. 그러나 6시간 이상의 중장거리 비행에서 28인치 좌석은 생명을 위협하는 '건강 리스크'로 돌변한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장시간 다리를 펴지 못하면 혈류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고, 혈전 생성 위험이 치솟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법원은 시민단체 'FlyersRights'가 제기한 소송에서 "좌석 크기와 DVT 발병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FAA의 손을 들어주었다. DVT의 직접적 원인은 '좌석'이 아니라 승객의 '부동 자세'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는 현실을 간과한 해석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무릎이 앞 좌석에 닿을 정도로 좁은 28인치 공간에서는 다리를 뻗거나 자세를 바꾸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협소한 좌석 공간이 승객에게 강제적인 부동 상태를 강요하는 근본적인 원인임에도, 법과 규정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법의 장벽: 왜 한국은 미국 항공사에 '넓은 좌석'을 강요할 수 없나?
그렇다면 한국이나 미국 정부가 자국에 취항하는 외국 항공사에게 "최소 30인치 이상의 좌석을 설치하라"고 명령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제법상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제 민간 항공의 헌법이라 불리는 시카고 협약(Chicago Convention) 제33조 때문이다. 이 조항은 "항공기가 등록된 국가(예: 미국)가 발급한 감항증명(안전 인증)을 도착지 국가(예: 한국)는 인정해야 한다"는 상호 인정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즉, 미국 FAA가 "28인치 좌석도 안전하다"고 인증했다면, 한국 정부가 안전을 이유로 이 항공기의 운항을 막거나 좌석 개조를 요구하는 것은 협약 위반이 된다.
이는 개별 국가가 독자적으로 '물리적 규격'을 강제하는 것을 막는 강력한 방어막으로 작용한다. 항공기 좌석 규제가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기준(ICAO 표준) 없이 표류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렇다면 이 불합리한 국제 표준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산 넘어 산'이다. 시카고 협약을 개정하여 좌석 규격을 강제하려면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총회에서 회원국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설령 총회를 통과한다 해도, 개정안이 발효되려면 각 회원국 의회에서 별도의 비준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가별로 항공 산업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이러한 압도적인 글로벌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것이 개별 국가들이 독자적인 물리적 규제를 포기하고 우회로를 찾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다.
1인치의 경제학
항공사에게 좌석 1인치는 막대한 수익이다. 피치를 2인치 줄이면 기내에 최대 2열(12석)을 더 넣을 수 있고, 이는 연간 수십억 원의 추가 매출로 이어진다. 이러한 경제적 논리 앞에 승객의 편의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강제적인 수치 규제보다는 정보의 투명성이 현실적인 해법으로 꼽힌다. 식품의 영양성분표처럼 항공권 구매 시 '좌석 간격 28인치, 너비 17인치'를 명확히 표시하게 하여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안이 유효할 것이다. 동시에 진행 중인 FAA의 새로운 비상 탈출 연구 결과가 나온다면, 이를 바탕으로 ICAO 차원의 국제 표준을 개정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