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버스 파업 철회 … 버스는 다시 달리지만

통상임금 뇌관 건드리지 못한 미봉책 합의

 

2026년 1월 13일 새벽, 천만 시민의 발이 묶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12년 만에 단행된 서울 시내버스의 전면 파업은 서울의 교통망을 순식간에 마비시켰고, 만 2일간의 치열한 막후 협상 끝에 14일 밤 극적으로 타결되며 15일 첫차부터 운행이 재개됐다. 이번 파업은 겉으로 보기엔 노사의 임금 협상 타결로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대법원 확정 판결이라는 거대한 법적 명분과 지자체의 재정 한계라는 현실적 벽이 충돌한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숨어 있다. 노조는 법적으로 승리한 '통상임금 기준 변경'을 전략적으로 유예하는 대신, 임금 인상과 정년 연장이라는 실질적인 과실을 챙기는 선택을 했다.


파업의 진짜 내막 : "법대로 하자"는 명분과 "돈 없다"는 현실의 괴리

 

이번 파업의 가장 근본적인 뇌관은 단순한 연봉 협상이 아니었다. 이미 사법부는 '정기 상여금을 포함한 통상임금 산정 기준(월 소정근로시간 176시간)'에 대해 노조의 손을 들어주는 확정 판결을 내린 상태였다. 이는 노조가 서울시와 사측을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법적 무기였다.

노조는 당초 이 확정 판결을 근거로 시급 산정의 분모를 기존 209시간에서 176시간으로 즉각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분모가 줄어들면 통상시급이 급등하고, 이에 연동된 연장·야간·휴일 수당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측과 서울시는 이 판결을 즉시 이행할 경우, 연간 수천억 원에 달하는 추가 재정 부담이 발생해 서울시의 교통 재정이 사실상 파탄 상태에 이를 것이라며 강력히 맞섰다.


노조의 전략적 선택 : 판결 이행 협상은 '유예', 실리는 '확보' 

 

14일 밤 11시 55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사후조정 끝에 도출된 합의안은 노조의 '실리 추구' 전략이 명확히 드러난 결과물이다. 합의의 핵심은 임금 2.9% 인상, 정년 연장 등이다.

주목할 점은 노조가 파업의 핵심 동력이었던 '통상임금 기준 변경(확정 판결 이행)'을 이번 협상 테이블에서 과감히 제외했다는 사실이다. 노조 지도부는 재정적 한계를 인정하고, 불확실한 미래의 법적 이행보다는 당장 조합원들의 손에 쥐어줄 수 있는 확실한 보상을 택했다.

 

  • 임금 2.9% 인상: 노조는 물가 상승률과 실질 소득 감소를 방어하기 위한 즉각적인 임금 인상을 관철했다.

  • 정년 연장: 고령화된 승무원들의 고용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정년 연장'을 합의안에 포함시킴으로써, 통상임금 유예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을 잠재울 명분을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서울시는 당장의 재정 파탄이라는 급한 불은 껐지만, 법적으로 지급 의무가 확정된 막대한 잠재 부채를 안고 시간을 번 셈이 되었다.


서울시의 구조적 한계 : '돈줄' 쥔 시장과 권한 없는 바지사장님

 

서울시가 이번 사태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하고 파업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몰고 간 배경에는 '서울형 준공영제'가 안고 있는 태생적인 구조적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1.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 버스 기사의 법적 고용주는 민간 운수업체지만, 인건비와 적자를 보전해주는 실질적인 '쩐주'는 서울시다. 사측인 운수업체는 서울시의 재정 지원 확약 없이는 독자적으로 임금 인상이나 판결 이행을 결정할 수 없는 '바지 사장'에 불과하다. 노조 역시 이를 알기에 사측을 건너뛰고 서울시를 향해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는 기형적인 협상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2. 재정 건전성의 딜레마: 서울시는 이미 수조 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끝까지 버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판결대로 176시간 기준을 적용할 경우 매년 1,500억 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시민 혈세가 추가로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대폭적인 버스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서울시 입장에서는 정치적 부담과 재정 원칙 사이에서 벼랑 끝 전술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에게 남긴 상처 : 97.6% 멈춤과 행정력의 낭비

 

파업이 진행된 13일과 14일, 서울 시민들은 공공 서비스의 부재가 가져오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 교통 무정부 상태: 전체 인가 노선의 97.6%가 운행을 멈추면서 650만 명에 달하는 버스 이용객이 갈 곳을 잃었다. 지하철로 수요가 일시에 몰리면서 주요 환승역의 혼잡도는 위험 수위까지 치솟았고, 영하의 날씨 속에 시민들은 출퇴근 전쟁을 치러야 했다. 특히 지하철망이 닿지 않는 교통 소외 지역의 피해는 더욱 심각했다.

  • 막대한 사회적 비용: 파업 수습을 위해 투입된 행정력과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서울시는 승용차 소통을 위해 가로변 버스전용차로 운영을 전면 중단하고, 전세버스를 긴급 투입하는 데 예산을 소모했다. 인접한 경기도 역시 출근길 대란을 막기 위해 서울 진입 28개 노선, 350여 대를 무료로 운행하는 등 지자체의 행정력이 시스템의 실패를 메우는 데 소진되었다.


미완의 평화, 남겨진 청구서

 

이번 합의로 서울의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통상임금 확정 판결의 이행'이라는 거대한 숙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 잠시 서랍 속에 넣어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노조는 언제든 "유예했던 판결을 이제는 이행하라"고 다시 요구할 수 있고, 서울시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재원 마련 대책 없이는 매번 파업의 공포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번 파업 타결은 노사가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잠정적으로 휴전한 것일 뿐이며, 준공영제의 재정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확정 판결에 따른 재정 부담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공론화가 시급한 과제로 남았다. 이번 버스 파업은 끝났지만, 서울 교통의 미래를 위협하는 시한폭탄의 초침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