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16일)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질병관리청 업무보고에서 탈모 치료제와 비만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그간 ‘미용’ 영역으로 분류돼 온 항목을 어디까지 어떠한 방식으로 건강보험으로 포괄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 발언은 정책 확정이 아니라 검토를 주문한 수준이지만, 대통령이 직접 ‘급여화의 논리’를 세대 형평성과 사회적 생존 문제로 연결한 점에서 파장이 작지 않다.
대통령의 ‘검토 지시’가 던진 질문'
대통령은 탈모를 두고 “탈모도 병의 일부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하면서, 과거와 달리 탈모가 당사자에게 단순 외모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정신건강까지 좌우하는 ‘생존’의 문제로 인식된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또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크다면 무제한 지원 대신 횟수 제한이나 총액 제한 같은 설계 옵션을 포함해 비용과 효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해보라고 주문한 것도 핵심 대목이다.
대통령은 동시에 비만 치료 역시 같은 구조로 바라봤다. 고도비만 치료에서 외과적 수술은 일부 급여가 적용되지만 이를 치료하기 위한 약제는 급여 논의가 진척되지 않은 현실을 거론하며, “비만 치료도 보험이 안 되지 않느냐”는 질문 형식으로 급여 검토 여부를 확인했다.
대통령 발언에서 특히 주목되는 지점은 ‘세대 간 불공평’이라는 프레임이다. 의료보험 지출이 구조적으로 고령층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청년층이 보험료를 내고도 자신들이 절실하다고 느끼는 영역에서는 혜택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커진다는 논리를 전면에 세웠다.
복지부가 그은 선 - 미용과 치료의 경계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업무보고 자리에서 탈모의 경우 의학적 이유로 생기는 ‘원형 탈모’ 등은 이미 급여 대상이지만, 유전적 탈모는 의학적 치료 필요성과의 연관성이 낮다고 평가돼 비급여로 남아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복지부는 생명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 질환을 미용적 이유로 급여화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기존 원칙도 재확인했다.
비만의 경우에는 고도비만에 대한 수술적 치료가 일정 기준에서 급여 적용을 받고 있다는 점을 복지부가 다시 강조했다. 다만 비만 치료제는 아직은 원론적 논의에 머물러 있으며, 대통령 지시 이후에는 재정 영향과 임상적 필요도를 포함한 ‘정책 설계’의 문제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탈모 급여화 비용은 ‘규모’보다 ‘설계’가 좌우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 수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탈모 치료에 사용되는 전문의약품 공급액은 약 2,394억 원 수준이며, 단순 추정으로 본인부담률을 30%로 적용할 경우 건강보험 부담은 약 1,676억 원, 50%로 적용할 경우 약 1,197억 원으로 계산된다. 이 수치는 건강보험이 실제로 어디까지, 어떤 조건으로, 어떤 본인부담 구조로 편입하느냐에 따라 ‘첫해 비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건강보험공단이 공시한 예산 기준으로 보면 2024년 건강보험급여비는 96조 473억 원, 2025년은 102조 4,678억 원으로 편성돼 있다. 위 추정 범위를 예산 대비로 환산하면 대략 0.12%에서 0.17% 수준으로, 숫자만 놓고 보면 단일 항목이 곧바로 재정을 뒤흔들 정도의 비중은 아니다. 다만 급여화는 가격 인하 효과를 유도할 수 있는 반면, 이용량이 급증할 경우 재정 부담이 ‘추정치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설계의 핵심 변수가 된다.
비만 치료제 급여화는 ‘당뇨 적응증’부터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의 ‘비만 치료’ 언급과 별개로, GLP-1 계열 약물을 중심으로 한 급여 논의는 현실적으로 당뇨병 적응증부터 전개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25년 12월 4일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통해 티르제파타이드 성분의 마운자로에 대해 성인 제2형 당뇨병 치료 보조제로서 급여 적정성을 인정했으며, 이후 절차는 약가협상과 고시로 이어지게 된다.
세마글루티드 성분의 오젬픽도 2025년 10월 2일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당뇨병 치료용으로 급여 적정성이 인정된 바 있다. 반면, 비만 치료제로 처방되는 위고비는 ‘비만 치료’ 적응증을 전제로 한 급여 신청이 공식적으로 진척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정리돼, 정책 논의가 ‘가능성’과 ‘제도 설계’의 층위에서 머물러 있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제시한 조건부 급여 기준 - 고위험군부터
2025년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의원이 제출받은 답변서에서 국회입법조사처는 GLP-1 계열 약물의 ‘치료 목적 사용’에 대해 건강보험법과 관련 고시, 심사평가원 평가 기준을 통해 국내 제도 안에서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취지의 검토를 내놨다. 급여화의 현실성을 처음으로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한 셈이어서, 비만 치료제 급여화 논의가 단순한 요구를 넘어 ‘설계 경쟁’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사처가 강조한 방향은 전면 급여화가 아니라 단계적·조건부 급여화다. 초고도비만 및 합병증 위험 환자처럼 의료적 위험도가 높은 집단을 우선 대상으로 삼고, 치료 효과와 부작용, 처방 행태를 모니터링하면서 범위를 조정하는 접근을 제안했다.
답변서에 담긴 고위험군 기준은 정책 논쟁의 중심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체질량지수(BMI) 35 이상이거나, BMI 30이면서 2개 이상 동반질환을 가진 경우처럼 ‘의료적 필요도’를 급여 문턱을 설정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와 학계의 거리 - 고위험군부터 시작하자는 접근
학계는 고위험군부터의 제한적 급여화를 출발점으로 삼자는 데 상대적으로 적극적이다. 고도비만 환자, 특히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시작해 재정 부담을 통제하면서 치료 접근성을 개선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비만 치료제를 제도권 안으로 들여오면 오남용을 관리할 수 있다는 논리도 학계에서 반복된다.
다만, 정부는 보다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초고도비만과 합병증 위험군처럼 ‘협의 가능한’ 범위를 먼저 설정하고, 우선순위와 재정 지속가능성을 함께 따져보겠다는 접근이다. 향후 급여 논의는 결국 고위험군 기준, 동반질환의 범위, 치료 기간과 중단 기준, 본인부담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관리급여는 ‘중간 단계’가 될 수 있지만 자동 전환은 아니다
최근 정부는 비급여 시장의 팽창과 과잉 진료 우려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관리급여’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관리급여는 선별급여 체계 안에서 가격과 진료기준을 설정해 관리하되, 일반 급여와 달리 높은 본인부담률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제도 설계를 예고했다.
탈모·비만 치료를 둘러싼 대안으로는, ‘곧바로 급여화’와 ‘현행 비급여 유지’ 사이에서 관리급여를 중간 단계로 활용하는 접근이 거론될 수 있다. 높은 본인부담률을 유지해 건보 재정 부담을 제한하되, 가격과 진료기준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해 통제 가능성을 높이고, 이후 이용량·효과·오남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급여 또는 선별급여 전환 여부를 판단하는 구상이다.
다만 중요한 점은 비급여 항목 전체가 자동으로 관리급여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 12월 9일 비급여관리정책협의체 논의 결과로 도수치료, 경피적 경막외강 신경성형술, 방사선온열치료 등 3개 항목을 첫 관리급여 적용 대상으로 선정했고, 체외충격파치료와 언어치료는 추후 재논의 대상으로 남겼다. 현재 기준으로는 탈모 치료가 관리급여 ‘첫 적용’ 목록에 포함돼 있지 않으며, 대통령 지시가 곧바로 관리급여 전환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급여 경계 논쟁의 본질 - 의료 필요도와 사회적 기능
탈모와 비만을 둘러싼 급여 논쟁은 단순히 젊은층 민원 대응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보험이 무엇을 질병으로 보고 어떤 기준으로 사회적 지원을 배분할 것인지에 관한 ‘급여 경계 설정’의 문제다. 탈모는 원형 탈모처럼 질환성 영역이 이미 급여화되어 있는 반면, 유전적 탈모는 의료 필요도와 미용적 목적의 경계가 얽혀 있어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비만은 만성질환 위험과 직결되는 의료적 성격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인식으로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 있어 인식개선도 필요하다. 또한, 약제 급여화는 광범위한 대상 확대 가능성과 장기 투약에 따른 총비용 증가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급여화 논의는 의료적 필요도를 어디에 두고, 어떤 관리 장치를 결합할지에 따라 급여, 또는 관리급여 그리고 그 속도의 결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남은 절차 - 건정심 판단과 정치적 파장
대통령 지시는 ‘검토’의 출발점이지만, 실제 제도화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 공식 심의 구조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 쟁점은 대상 범위, 본인부담 구조, 재정 추계의 신뢰도, 약가 인하 효과와 이용량 증가의 균형, 그리고 다른 필수 의료 재정 소요와의 우선순위 조정으로 모일 가능성이 크다. 현실적으로는 비만 치료제처럼 의료적 위험도가 높은 영역을 고위험군 중심으로 조건부 급여화하고, 처방 기준과 사후 모니터링을 결합해 오남용을 통제하는 방식이 정책 옵션으로 부상할 수 있다.
여기에 탈모·비만처럼 비급여 논쟁이 큰 항목은 관리급여를 중간 단계로 활용해 재정 부담을 제한하면서 가격과 기준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한 뒤, 축적된 이용량·효과 데이터에 따라 급여 또는 선별급여 전환 여부를 판단하는 접근도 함께 검토될 수 있다.
다만, 비만은 여러 합병증으로 의료비 지출이 누적되는 구조인 만큼, 고위험군에 대한 조기 개입이 중장기적으로 사회적 비용과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는 관점까지 함께 고려하면 비만 분야의 정책 우선순위를 상대적으로 높게 둘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힘을 얻을 수 있다.
동시에 이번 발언은 ‘탈모’라는 상징적 의제를 통해 청년 세대가 체감하는 사회보험의 형평성 문제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정치적 파장도 예상된다. 야권과 일부 의료계에서 ‘우선순위의 왜곡’이나 ‘포퓰리즘’ 프레임으로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가 탈모와 비만을 동일 선상에 놓기보다 의료적 필요도와 관리 가능성을 기준으로 정책 패키지를 분리 설계하느냐에 따라 논쟁의 성격은 정책 설계 경쟁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