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거주자의 하루는 걷기로 시작해 걷기로 끝난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출근길과 아이의 등굣길,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가는 길이 모두 보도 위에서 완성된다. 도시의 이동은 대중교통과 보행이 맞물리는 구조로 작동하지만, 한국의 보행공간은 여전히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한국의 도시 정책은 오랫동안 자동차 흐름과 차도의 효율에 집중해 왔다. 그 과정에서 보행로는 보행권을 담는 공간이 아니라 차도를 만들고 남은 부수적 공간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걷기가 일상의 이동이자 운동이 된 지금도 보행공간은 불편과 위험을 동시에 안고 있다.
좁은 폭과 불규칙한 경사, 끊긴 흐름이 보행을 지치게 한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문제는 보도의 폭이 절대적으로 좁다는 점이다. 좁은 보도 위에는 전봇대와 가로수, 각종 시설물과 불법 적치물이 반복적으로 놓인다. 이로 인해 시민이 실제로 걸을 수 있는 유효 폭은 구간마다 급격히 줄어든다.
보행공간의 질도 낮다. 보도블록은 들뜨거나 침하되며 단차를 만들고, 파손된 타일은 낙상 위험을 키운다.
각종 공사 이후 복구가 균일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보행자는 늘 발밑을 확인해야 한다. 가장 크게 체감되는 불편은 차도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횡단 경사다. 배수만을 고려해 형성된 경사는 보행 중 몸의 중심을 한쪽으로 쏠리게 만든다. 장시간 보행 시 발목과 무릎의 부담이 커지고, 유모차와 휠체어 이용자는 이동 자체가 어려워진다.
이 같은 환경은 고령화 사회에서 더 직접적인 안전 문제로 이어진다. 노년층에게 작은 단차와 경사는 낙상 사고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보행로의 질이 낮으면 외출 빈도가 줄고 신체 활동이 감소한다. 보행공간의 개선은 단순한 편의시설 정비가 아니라 도시의 건강 인프라를 강화하는 과제가 된다.
해외 도시는 보도를 도시 경쟁력의 핵심으로 관리한다
걷기 좋은 도시로 평가받는 해외 주요 도시는 보도를 도시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본다. 보행로 폭과 연속성을 제도로 관리하고, 자전거와 보행 동선을 물리적으로 분리해 충돌을 줄인다. 배수보다 보행자의 수평 유지와 평탄성을 설계의 우선순위에 놓는 사례도 많다. 공사 전후 보도의 품질을 동일하게 유지하도록 관리하고, 보행자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보행로 투자를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도시 운영을 위한 기본 비용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차도의 정체와 사고에는 즉각 반응하면서도 보도의 불편은 개인이 감수해야 할 문제로 남겨 둔 관행을 바꿔야 한다. 보행은 도시 생활의 기본이고, 보행로의 질은 도시의 품격과 직결된다.
이에 본지는 1편을 시작으로 해외 도시들이 보행공간을 최우선에 둔 사례를 3편에 걸쳐 살펴보고, 마지막 4편에서 한국 실정에 맞는 개선 방향을 정리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