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너지 탈탄소 전환, 히트펌프가 ‘난방의 전기화’ 시험대에 올랐다

35년까지 350만대 보급과 518만톤 감축 목표…전기요금 구조부터 손본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열에너지 탈탄소화를 핵심 과제로 내세우며 ‘히트펌프 보급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정부는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를 보급해 온실가스 518만톤을 줄인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도시가스 미보급 지역과 에너지 다소비 업종, 공공시설을 시작점으로 보조와 제도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구상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지열’ 중심으로 알려져 온 히트펌프 시장에 공기열 기반 히트펌프를 본격 도입해, 건물 난방의 전기화를 더 넓은 범위로 확산시키겠다는 성격이 뚜렷하다.

이번 대책은 난방과 급탕, 산업공정 등에서 쓰이는 열에너지가 우리 사회의 에너지 소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함에도, 그동안 탄소중립 정책의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발전부문 전환이나 전기차 확산 같은 ‘전기·수송’ 분야에 집중돼 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열 부문은 에너지를 많이 쓰고 배출도 적지 않지만, 보급 지원과 요금체계, 건축기준, 인증 제도 같은 정책 수단이 촘촘하게 맞물려 있지 않아 전환이 더디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열은 전체 에너지 소비의 약 48%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열에너지 소비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도 에너지 부문 배출량의 약 29% 수준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공기열 히트펌프를 전면에 세우는 이유는 효율과 활용성 때문이다. 히트펌프는 기존 화석연료 보일러 대비 에너지효율이 높다는 점이 강점으로 제시되는데, 효율성능을 ‘생산 열원 대비 투입 열원’으로 환산하면 공기열 히트펌프는 2.0-3.0 수준인 반면, 가스보일러는 0.8-0.95 수준으로 제시된다. 또 난방만이 아니라 냉방과 온수 공급까지 하나의 설비로 수행할 수 있어, 건물 에너지체계 전환에서 활용 폭이 넓다는 점도 정책적 설득 논리로 동원된다.


‘보급’보다 어려운 ‘전환’, 화석연료 중심 제도의 관성이 핵심 장벽으로 꼽힌다

 

정부가 진단한 가장 큰 장애물은 도시가스 중심의 공급 구조와 제도적 의무 규정이다. 주택 건설 시 도시가스 공급설비 설치 의무, 비전기식 냉방설비 설치 의무 같은 규정은 전기화 전환을 제약해 왔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스와 지역난방 요금은 히트펌프로의 전환 유인을 낮춘 요인으로 지목된다.

설치·운영 비용 부담도 현실적 과제로 제시됐다. 히트펌프는 가스나 지역난방 대비 설치비가 높고, 전력 사용량이 큰 설비 특성상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아래에서는 운영비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점이 함께 거론된다. 특히 국내 주거의 다수를 차지하는 공동주택에서는 바닥난방을 위한 설치공간 확보와 설비 하중 증가 문제까지 겹치며, 보일러 대체가 단순한 기기 교체로 끝나지 않는 구조라는 점이 강조된다.


지원의 첫 타깃은 ‘도시가스 없는 곳’… 태양광 연계와 마을 단위 패키지로 확산을 노린다

 

정부는 보급의 우선순위를 도시가스 미보급 지역에 두되, 초기에는 온난한 지역(예: 제주·경남·전남 등)을 우선 대상으로 삼겠다는 방향을 제시한다. 태양광이 이미 설치된 기축 단독주택을 대상으로 히트펌프 설치를 지원하고, 마을회관 같은 공동시설에는 태양광과 히트펌프를 결합한 패키지 보급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취약계층이 거주하는 사회복지시설에도 히트펌프 설치를 지원해 난방 전기화의 체감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농업 부문은 시설재배 난방 전환이 핵심이다. 정부는 화훼와 채소 등 시설재배농가에서 히트펌프를 난방시설로 활용하도록 지원을 확대하고, 향후 스마트팜 단지에서도 폐열과 히트펌프 활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4대강 보 주변 지하수 다량 사용 지역에서 수막재배의 대안으로 히트펌프 기반 냉난방 전환 모델을 검토하겠다는 방향도 제시됐다.


목욕탕·수영장 등 ‘열 수요가 큰 업종’과 공공시설에 설치비 보조와 융자 지원

 

상업·서비스 부문에서는 난방과 급탕 수요가 큰 업종을 집중 공략한다. 목욕탕, 숙박업, 수영장, 물놀이 시설, 기숙사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을 대상으로 설치비 보조와 장기 저리 융자 지원을 확대하고, 학교와 청사 같은 공공시설에는 히트펌프와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한 ‘건물자립형’ 보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재정지원의 확장성과 지속성은 ‘금융모델’과 결합된다. 정부는 사업 성과를 검토한 뒤 2027년 이후 단계적 확대를 예고하면서, 제조업체나 에너지플랫폼사가 일정기간 장비를 대여하고 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분할상환요금제, 이른바 구독형 모델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공기열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고, 전기요금과 인증 기준을 ‘한국형’으로 재설계한다

 

이번 대책의 제도 파트는 사실상 보급 규모만큼이나 무게가 크다. 정부는 공기열을 재생에너지 범주에 포함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히트펌프 보급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규정 정비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주거에서 바닥난방 선호가 뚜렷하다는 점을 반영해 가정용 고효율 히트펌프(공기-물)의 국가표준(KS) 인증과 환경표지 인증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전기요금과 관련해서는 히트펌프가 전기를 많이 쓰는 설비라는 점에서, 누진제를 적용하는 일반 전기요금 체계로는 운영비 부담이 커져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정부는 현행 주택용 누진제가 보급 확대에 부적절하다고 보고, 한국전력과 협의해 주택용 누진제 미적용을 포함한 별도 요금제 도입을 추진한다. 구체적으로 공기열 히트펌프도 지열 히트펌프처럼 일반용 등 별도의 요금 선택을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소비자가 주택용·일반용·계시별요금제 등에서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요금체계를 정비한다.

신축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에서도 히트펌프로 생산하는 열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에너지공급자 효율향상제도(EERS)와 연계해 히트펌프 보급의 에너지 절감실적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체계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공동주택 확산을 위해 주택건설기준과 에너지절약형 친환경주택 기준, 건축물 에너지절약설계기준 등 건설 관련 규정의 개정 추진도 포함됐다.


화석연료 보조금은 줄이고, ‘비전기식 냉방 의무’는 완화한다

 

정부는 기존 화석연료 중심의 보조사업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히트펌프 보급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도시가스 등 비전기식 냉방설비 설치 의무를 축소해 히트펌프 설치가 가능한 건물 범위를 넓히는 방향의 규제 개선도 추진한다.

전력피크 부담을 이유로 전기화를 묶어두지 않겠다는 메시지도 눈에 띈다. 정부는 전력 부하를 제어할 수 있는 ‘전력수요관리형 히트펌프’를 비전기식 냉방설비 범주에 포함해 설치를 유도하겠다고 설명했다. 신축건물 난방을 히트펌프 또는 가스 등으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주택과 도시가스 관련 법령 개선 협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보급률은 제도와 비용 구조가 좌우한다

 

정부의 목표는 야심차지만, 보급을 가로막아 온 문제를 정확히 겨냥했는지가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공기열의 재생에너지 인정, 공동주택 설계 기준 개정, 전기요금 체계 보완은 모두 시장의 초기 불신과 비용 부담을 완화하는 핵심 레버로 꼽힌다. 다만 현장에서는 히트펌프 기반 지열난방 시스템의 경험으로 인해 ‘히트펌프는 비용 대비 효용이 낮다’는 인식이 이미 형성돼 있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지열난방 시스템은 총공사비의 50%를 지원하더라도 실제 설치비가 2,000-3,000만 원대에 이르러, 40평 기준 약 2,500만 원 중 1,250만 원만 지원받고도 건축주 자부담이 상당하다는 불만이 누적돼 왔다. 기술 측면에서도 지열 히트펌프는 고압 냉매 압축으로 작동하는 민감한 구조여서, 여름철에 장비 전원을 장기간 꺼두면 모터 부식과 회전축의 녹·스케일로 기동 불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경험이 ‘히트펌프는 비싸고 고장 나기 쉬운 설비’라는 일반화로 번질 경우, 지열과 다른 조건에서 작동하는 공기열 히트펌프 보급 확대 전략에도 부정적 인식이 전이될 수 있다.

따라서 보급정책은 보조금과 규제 개선을 넘어, 지열과 공기열의 적용 환경과 유지관리 특성을 분명히 구분해 설명하고, 계절별 운전 가이드와 A/S, 유지관리 교육, 성능·내구 인증 같은 신뢰 장치를 함께 설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기요금은 히트펌프 경제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인 만큼, 정부가 바뀌더라도 예측 가능한 원칙과 장기 로드맵을 유지해 제도의 일관성을 확보해야 시장이 설비 전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법령 개정과 요금제 개편은 이해관계 조정이 필수인 만큼, 속도와 일관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보조금 중심의 단기 사업’으로 축소될 위험도 여전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번 대책을 건물 부문 탈탄소 전환의 출발점으로 규정하며, 탈탄소 전환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함께 고려한 열에너지 청사진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열에너지의 전기화는 결국 전력망, 요금제, 건축기준, 산업정책이 동시에 맞물리는 종합 과제인 만큼, 히트펌프 확산은 정부의 ‘열 정책’이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했는지 가늠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