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굳건했던 '65세 기준'의 균열… 제13회 국무회의가 쏘아 올린 신호탄
대한민국 고령화 정책의 패러다임이 거대한 전환점에 섰다. 1984년 도입 이후 지난 40여 년간 우리 사회에서 '노인'을 규정하는 절대적 잣대였던 '만 65세'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 그 결정적인 신호는 지난 3월 24일 열린 제13회 국무회의에서 포착됐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은 노인 무임승차 제도를 언급하며 "혼잡한 출퇴근 피크 시간대만이라도 무임승차를 제한하는 방안은 어떠냐"는 화두를 던졌다. 표면적으로는 도시철도의 적자 해소 방안처럼 보이지만, 관가와 학계는 이를 단순한 교통 정책의 변화가 아닌 '법정 노인 연령 상향'을 위한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대통령의 언급 직후 정부 부처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기획예산처와 보건복지부는 만 65세인 노인 연령을 70세 등으로 높이는 방안을 구체적인 정책 대안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미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실시한 '노인 실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연령 기준 조정의 타당성을 내부적으로 검토해온 상태였다.
당사자들의 선제적 제안: "미래 세대의 짐을 덜어주자"
주목할 점은 이번 논의가 정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복지 축소를 우려해 가장 강력하게 반대할 것으로 예상됐던 대한노인회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대한노인회는 지난 2025년 10월, "미래 세대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인 기준 연령을 75세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는 노인 스스로가 '부양받는 대상'에서 '사회를 책임지는 주체'로 인식 변화를 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65세는 과거와 달리 신체적으로 매우 건강하며, 사회적 활동 의지가 강하다는 실질적인 데이터가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한다.
최대 603조 원의 가치… 홍익대 산학협력단 추산
정부 논의에 최근 발표된 홍익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연구 결과가 자주 언급된다고 한다. 박명호 교수팀이 작성한 '실버시대와 재정'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연령 상향은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지키는 '마법의 지팡이'와 같다.
보고서는 노인 연령을 어떻게 올리느냐 따라 향후 수십 년간 국가 예산을 최소 203조 원에서 최대 603조 원까지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기대수명에 연동하여 노인 연령을 최종 75세까지 올리는 시나리오에서는 우리 사회가 고령화로 인해 겪게 될 재정적 파국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됐다. 이 보고서는 2026년 4월 현재, 대통령실과 부처의 정책 수립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로 인용되고 있다.
선택과 집중: '보편적 복지'에서 '효율적 자조'로
이번 정책 기조의 핵심은 '모든 고령층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던 기존의 보편적 복지 모델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통렬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급격한 고령 인구 증가로 인해 한정된 예산을 기계적으로 배분하다가는 정작 도움이 절실한 이들에게 갈 혜택마저 얇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구상하는 새로운 모델은 건강한 노인에게는 일할 기회를 주고, 취약한 노인은 두텁게 보호하는 이원화 전략이다. 일할 능력이 충분한 60대 후반과 70대 초반에게는 정년 연장이나 재고용 등 노동 시장 참여 기회를 보장하여 스스로 경제적 기반을 닦게 한다. 이렇게 연령 상향을 통해 절감된 예산은 나이가 매우 많아 근로 능력이 없거나, 건강이 악화된 층, 그리고 극빈층 고령자에게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더 두터운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소득 절벽'이라는 숙제… 연착륙을 위한 정교한 설계 필요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홍익대 보고서와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소득 공백' 문제를 경고한다. 법적 정년과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사이의 괴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노인 연령만 덜컥 높일 경우, 은퇴 후 복지 혜택을 받기 전까지 수년간 소득이 전무한 '절벽 구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보고서는 두 가지 핵심 제언을 담고 있다. 첫째는 서서히연령을 높이자는 것이다. 2~5년 주기로 1세씩 천천히 올려 사회적 적응 기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두째는 연령 상향 과정에서 탈락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별도의 보완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멈출 수 없는 시계추, 이제는 '어떻게'를 고민할 때
현재 흐름을 종합해 볼 때, 65세 기준의 상향 조정은 이제 '가부(可否)'의 문제가 아닌 '시기와 방법'의 문제로 접어들었다. 국무회의에서 나온 대통령의 의지, 당사자 단체의 전향적 태도, 그리고 수백조 원의 재정 절감 효과를 입증한 학술적 근거까지 모든 톱니바퀴가 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결국 관건은 '누구를 소외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필요한 곳에 국가의 온기를 집중할 것인가'에 있다. 40년 만의 이 거대한 수술이 대한민국을 지속 가능한 고령사회로 이끌 수 있을지, 국민의 이목이 정부의 후속 로드맵에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