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동 분쟁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이른바 ‘전쟁 추경’을 편성하고, 핵심 사업인 고유가 피해지원금의 구체적 집행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대책의 특징은 코로나19 당시의 보편적-일률적 지원 방식과 달리, 현 정권이 강조해 온 ‘지방시대’와 ‘약자복지’ 기조를 반영한 차등 지원 구조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수도권 중심 지원에서 벗어난 지방 우선 기조
이번 지원안의 가장 큰 변화는 소득 수준뿐 아니라 거주 지역까지 지원금 산정의 핵심 변수로 반영하려 한다는 데 있다. 정부는 교통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수도권보다 유류비 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부담이 큰 비수도권 거주자에게 지역 격차를 보전하는 방식의 추가 지원을 검토 중이다. 이는 그동안 각종 인프라 혜택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온 지방 주민에 대한 실질적 보상인 동시에, 지역 균형 발전을 국정 운영의 우선 과제로 두겠다는 정책 의지가 반영된 조치로 해석된다.
취약계층에 더 두터운 지원, 하후상박 구조 강화
지원 방식 역시 소득 하위 계층을 폭넓게 포괄하되,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 더 두터운 지원을 집중하는 하후상박 구조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는 단순한 물가 상승분 보전을 넘어,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더 큰 타격을 받는 취약계층의 구매력을 복구하겠다는 핀셋형 민생 대책의 성격이 짙다. 특히 약자복지를 국정 핵심 기조로 내세워 온 현 정부로서는, 위기 대응 재정을 통해 정책 우선순위를 다시 한번 분명히 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지역과 소득을 함께 반영하는 차등 지원 구상
구체적인 지원 구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정부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지역별 차등의 성격은 더욱 분명해질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수도권에 거주하는 소득 하위 계층에게 20만 원 수준의 지원이 이뤄진다면, 대구와 같은 비수도권 광역시 거주자에게는 30만 원, 밀양 같은 소도시나 읍면 지역 거주자에게는 40만 원 수준으로 더 많은 금액이 책정되는 방식이 가능하다. 또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에는 최대 60만 원 수준까지 지원을 늘리는 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이라면 수도권은 기본적인 물가 상승 보전에 초점이 맞춰지고, 비수도권 광역시는 인프라 격차와 높은 자가용 의존도를 반영해 더 많은 지원을 받게 된다. 소도시와 읍면 지역은 유류비 부담이 생계와 직결되는 교통 소외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해 가장 높은 수준의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지원 구상은 단순한 현금 지급을 넘어, 지방 거주에 따르는 구조적 비용을 정책적으로 보전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책 실험의 의미와 남은 논란
정부는 이번 대책이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더 큰 고통을 감내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 위에서 설계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다만 논란의 소지도 적지 않다. 소득 기준선에 근접한 수도권 중산층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고, 대규모 추경 편성에 따른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무엇보다 지역과 소득을 동시에 반영한 정교한 차등 지원 체계를 어떻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집행할 것인지가 실제 정책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코로나 시기 문재인 정부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검토했다가 행정적 어려움으로 모두에게 지원금을 지급한 경험도 새 정책 시행이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할 수 있음을 예고한다. 만약 이번 지원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이번 지원 방식이 향후 다른 복지정책으로 확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보편 지원에서 정책적 선별 지원으로
결국 이번 ‘전쟁 추경’은 단순한 위기 대응 예산을 넘어, 현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재정을 배분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에 가깝다.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나누는 지원이 아니라, 지방과 취약계층에 더 두텁게 배분하는 선별 지원을 통해 국정 철학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고유가 위기에 대한 단기 처방이면서도, 동시에 지방시대와 약자복지라는 장기 국정 기조를 재정 정책으로 구현하려는 시험대라는 점에서 이번 추경의 의미는 작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