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고위급 협상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합의 없이 끝나면서, 중동 휴전 기대는 빠르게 약해졌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이란은 통제권을 고수했고, 미국은 이에 맞서 이란 항만으로 드나드는 해상 교통을 차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해협 전체가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지만, 시장은 이미 이를 실질적 재봉쇄 국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국면에서 드러난 것은 이란이 핵 문제와 별개로 호르무즈 해협을 세계 에너지 시장에 즉각 충격을 줄 수 있는 전략 자산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협상은 왜 깨졌나
이번 협상은 최근 전쟁 이후 성립한 2주 휴전을 연장하고, 핵 문제와 해협 통항 문제를 함께 다루기 위한 자리였다. 회담은 약 21시간 이어졌지만 접점을 만들지 못했다. 미국은 우라늄 농축 중단, 주요 핵시설 해체, 무장세력 지원 중단, 호르무즈의 완전한 개방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이란은 민간 핵 프로그램 유지 권리, 해협 통제권 인정, 적대행위 중단, 전쟁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결국 핵 문제와 해협 문제가 동시에 충돌했다. 미국은 이란의 핵무장 가능성을 차단할 수준의 약속을 원했지만, 이란은 이를 주권 침해로 받아들였다. 해협 문제에서도 미국은 자유 통항을, 이란은 전략자산으로서의 통제권 유지를 고수했다. 이번 회담은 휴전 연장 협상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란이 핵 프로그램 못지않게 호르무즈를 즉각적인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해협 통제와 군사 대응이 해협 봉쇄 효과 극대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이번 조치는 전면 봉쇄와는 다르다. 이란은 기뢰 위협, 사전 허가 요구, 군함 접근 경고로 선박 운항을 위축시키고 있고, 미국은 해협 전체를 막기보다 이란 항만 출입 해상 교통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맞서고 있다. 비이란 항만으로 향하는 선박의 통과 자체는 막지 않겠다는 것이 미국의 설명이지만, 시장과 선사들이 체감하는 압박은 훨씬 크다.
해협이 법적으로 완전히 닫히지 않았더라도 선사들은 기뢰 위험, 군사 충돌 가능성, 보험료 급등, 운항 지연을 모두 감안해야 한다. 상업 운항의 관점에서는 이미 봉쇄에 가까운 압박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이란 항만 차단 발표와 이란의 군함 접근 경고가 맞물리면서, 해협은 상업 항행과 군사 억지가 충돌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협상 결렬 직전인 4월 11일 미 해군 구축함 2척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와 기뢰 제거 사전 작전 공개도 이런 긴장이 이미 군사적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유가는 왜 즉시 반응했나?
협상 결렬과 미국의 차단 발표가 겹치자 시장은 곧바로 위험 프리미엄을 다시 반영했다. 휴전 기대가 살아 있던 시점에는 유가가 급락했지만, 협상이 무산된 뒤 브렌트유와 WTI는 다시 100달러선을 넘어섰고 WTI는 104달러 안팎까지 치솟았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의 구조적 비중과 직결된다. 2025년 상반기 기준 이 해협을 지나는 원유와 석유제품은 하루 평균 2090만 배럴로, 전 세계 석유류 소비의 약 20% 수준이다. LNG 역시 하루 11.4 Bcf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실제 전면 차단이 없어도 위협만으로 공급 차질과 보험 리스크가 현실화되면 유가는 먼저 뛴다. 이번 급등도 물량 부족보다 통로의 불안정성 자체가 가격에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반면 같은 시점 아시아 주식시장의 반응은 유가만큼 크지 않았다. 일부 증시는 하락했지만, 전반적인 금융시장 반응은 지난주 중반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흐름에 가까웠고 충격도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결론
이번 사태는 단순한 외교 실패를 넘어, 이란이 핵 문제와는 별개로 호르무즈를 더 즉각적인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핵 프로그램이 장기적 위협이라면,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LNG 흐름, 해상 보험, 운임, 물가를 통해 훨씬 더 빠르게 충격을 확산시키는 전략 자산으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 항만 차단으로 이에 맞서고 있지만, 해협의 물리적 통과 여부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누가 이 수로의 규칙과 통제권을 사실상 좌우하느냐다.
직접적인 충격은 우선 유가와 해상 운송비, 보험료 같은 에너지·물류 비용에 집중되고 있다. 아시아 주식시장의 반응은 아직 제한적이지만, 원유와 LNG를 외부에 의존하는 아시아와 유럽의 수입국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부담을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호르무즈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길어질수록 비용은 에너지 가격과 물가를 통해 제3국 경제로 전가되고, 특히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서는 경기 둔화와 맞물린 스태그플레이션 압력도 함께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