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세종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정부가 ‘국민연금 첫 보험료 지원’(2027년 목표)을 청년층 노후소득 보장 강화 과제로 제시하자, 대통령이 곧바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제도 설계의 빈틈을 짚었다.
복지부가 청년 지원을 정책 목표로 내세웠지만, 대통령은 “첫 보험료를 국가가 내주면 이후 못 내더라도 나중에 소급 납부로 가입기간이 늘어 이익이 크다”는 설명을 들은 뒤 “정보가 빠른 소수만 혜택을 보면 공평하지 않다”는 취지로 반문했고, “누구나 소급해서 납부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도 이어갔다. 장관은 “첫 보험료 지원은 국정과제이며 2027년 도입 목표로 진행 중”이라고 답하면서도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제도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정책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안 하는 것보다 낫지만 특정 세대만 첫 보험료를 지원하면 ‘왜 나는 제외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하며, 청년 지원의 선의가 제도 작동 과정에서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첫 달’이 여는 문-추납 구조가 만드는 정보 격차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현행 국민연금의 추납 구조와 맞닿아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연금보험료를 1개월 이상 납부한 날 이후 적용제외된 기간”이 추납(추후납부) 대상에 포함되는 구조가 자리하고 있어, ‘일단 1개월 납부 이력’을 만들어 두면 이후 추납으로 가입기간을 메울 수 있는 경우가 생긴다. 이 구조는 제도 바깥의 불평등 요인이 사회보험 내부로 유입될 수 있다는 논쟁을 낳는다.
정보가 많은 부모가 자녀가 18세가 되는 시점에 자녀 명의로 납부를 시작하는 방식으로 ‘추납의 문’을 미리 열어두는 반면, 정보 접근이 낮고 가처분 소득이 부족한 계층은 제도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실행하기 어려워 같은 제도 안에서 출발선이 갈릴 수 있다는 불만이 누적된다는 것이다.
연체와 직권탈퇴 규정이 키우는 취약성
정보 격차는 단지 가입 개시 시점에만 나타나지 않고, 제도 유지 과정에서 더 뚜렷한 위험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국민연금은 가입기간 10년(120개월) 이상을 채워야 수급자격이 생기기 때문에 ‘첫 달’의 납부 이력만으로 노후소득 보장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초기 지원으로 가입을 시작하더라도 이후 납부 공백이 길어지면 10년 요건을 채우지 못해 수급 단계에서 다시 불리해질 수 있고, 설령 10년 요건을 겨우 충족하더라도 납부기간과 납부수준이 얇으면 연금수급액이 낮아 실질적인 노후보장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남는다. 결국 첫 보험료 지원이 ‘추납의 출발점’으로 기능할수록, 정보·자금·행정 여력이 있는 집단이 요건 충족과 수급액 제고까지 더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다.
여기에 임의가입자가 6개월 이상 연체하면 직권탈퇴(자격상실)가 될 수 있다는 규정은 ‘간헐 납부로도 유지될 것’이라는 통념과 충돌하며, 소득이 불안정한 집단일수록 제도 이탈 위험을 키운다.
따라서 ‘첫 보험료 지원’이 형평성 정책으로 작동하려면, 가입을 열어주는 것만큼이나 취약계층이 10년 요건을 안정적으로 채우고 급여 수준까지 연결되도록 유지 장치를 함께 설계하는 과제가 동반돼야 한다.
청년 지원을 넘어 사회보험의 형평성 설계 문제로
부모의 교육과 자산이 자녀의 사회적 지위를 좌우한다는 문제의식은 이미 널리 공유돼 왔고, 여기에 국민연금이라는 사회보험 내부에서도 납부 개시 시점과 제도 활용 능력의 차이가 장기적으로 격차를 벌릴 수 있다는 우려가 겹치고 있다.
사회보험은 국민들이 각자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함께 부담해 위험을 분산시키는 원리를 바탕으로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하고 사회 통합을 떠받치는 장치인데, 특히 국민연금은 의료기술의 발달로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환경에서 ‘장수에 따른 노후소득 위험’과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질가치 하락 위험을 개인이 정밀하게 계산하거나 대비하기 어려운 만큼 공동부담과 위험분산이 전제된다. 그런데 정보와 자산에 따라 ‘활용 결과’가 갈리면 이 위험분산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고 사회보험의 목적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경제·사회적 불평등이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커질수록 제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정책의 정당성도 약해지는 만큼, ‘첫 보험료 지원’ 논쟁은 단순한 청년 지원 정책을 넘어 사회보험의 형평성 설계 과제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설계의 초점-가입 개시와 ‘완주’
‘첫 보험료 지원’은 시작선을 공적으로 열어주겠다는 발상 자체로는 불평등 완화의 방향과 맞닿아 있지만, 제도가 실제로 불평등 완화로 이어지려면 ‘유지 가능성’과 ‘취약계층의 이탈 방지’까지 설계의 일부로 포함돼야 한다.
대통령의 반응은 ‘좋은 취지’와 ‘작동 결과’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 장면으로 읽힌다.
정책적으로는 제도 활용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소급 납부의 접근성을 넓히는 방향, 납부 공백이 잦은 집단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지 않도록 제도 유지 장치를 보완하는 방향, 그리고 청년 지원이라는 목표가 다른 세대의 박탈감을 키우지 않도록 형평성의 기준을 분명히 하는 방향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
국민연금 개편은 “좋은 취지”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불평등이 커지는 현실에서 사회보험이 어떤 방식으로 통합을 복원할지 제도 설계 자체가 답을 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