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병세척기 미세플라스틱 ‘불검출’ - 젖병은 별도 과제

커뮤니티발 우려로 촉발된 시험 - “세척기 안전성” 확인, 다음은 젖병 실험 필요해

 

한국소비자원이 시중 유통·판매 중인 젖병세척기 8개 제품을 시험한 결과, 사용 전후 배출수와 기기 내 젖병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모두 ‘불검출’(검출한계 이하)로 확인됐다. 다만 이번 시험은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지 않은 세제와 ‘유리 젖병’을 사용해 세척기 자체에서 유래한 미세플라스틱 발생 여부를 분리해 본 것이어서, 폴리프로필렌(PP) 젖병이 실제 사용 과정에서 방출할 수 있는 미세플라스틱 문제는 별도 점검 과제로 남는다.


 

젖병세척기 8종, 사용 전후 모두 ‘불검출’ - 리콜 대상 제품도 특이사항 미확인

 

소비자원은 국제표준을 준용해 FTIR(적외선 분광분석)로 20마이크로미터 이상 미세플라스틱을 확인했으며, 시험 대상 8개 제품 전부가 검출한계 이하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시험은 새 제품을 3회 공세척한 뒤 마지막 배출수에서 검출 여부를 확인하고, 이어 소비자 실사용을 재현하기 위해 미세플라스틱 불검출 세제를 사용해 유리 젖병 4개를 넣은 상태로 101회 사용한 뒤 유리 젖병과 배출수에서 다시 검출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소비자원은 과거 내부 부품 파손 사례로 자발적 리콜이 진행됐던 오르테·소베맘 제품도 조사 대상에 포함했으며, 무상 수리 대상 제품에 대한 사후 모니터링 과정에서 현재까지 내부 부품 파손 등 특이사항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불검출’ 결과의 해석 - 세척기 안전성 확인과 젖병 노출 문제는 분리해서 봐야

 

이번 시험 설계의 핵심은 ‘세척기’에서 기계적 마모나 필터·부품 손상 등으로 미세플라스틱이 배출될 가능성을 점검하는 데 있었고, 이를 위해 젖병 자체에서 입자가 나올 수 있는 변수를 차단하려고 유리 젖병을 사용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젖병세척기 사용이 곧바로 미세플라스틱 노출을 키운다’는 불안은 일정 부분 해소됐지만, PP 젖병에서 방출되는 미세플라스틱이 유아의 주요 노출원으로 지목돼 온 국제 연구 흐름과는 다른 질문에 답한 셈이다.

Trinity College Dublin 연구진이 2020년 Nature Food에 발표한 연구는 WHO 권장 분유 준비 절차를 적용했을 때 PP 젖병에서 리터당 최대 1,620만 개 수준의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방출될 수 있고, 12개월 유아의 일일 평균 노출량이 160만 개 안팎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한 바 있다. 해당 연구는 액체 온도가 높을수록 방출량이 증가하는 경향도 함께 제시했다.

미세플라스틱의 인체 영향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지만, 최근 연구는 ‘어떤 경로로 염증 반응이 촉발될 수 있는지’를 구체화하고 있다. 2023년 Environment International 논문은 젖병에서 떨어져 나온 불규칙 형태의 미세플라스틱 노출이 장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제시하며, 위험 평가의 논점을 ‘노출량’뿐 아니라 ‘입자 특성’과 ‘생물학적 반응성’으로 확장시켰다.


국제 규제는 ‘의도적 첨가’ 중심 - 이차 미세플라스틱 방출은 제도 공백

 

규제 환경은 국가별로 엇갈린다. 유럽연합(EU)은 REACH 체계에서 ‘의도적으로 첨가된’ 합성 고분자 미립자(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제한을 도입했지만, 제품의 사용·마모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차 미세플라스틱 방출은 규제 공백으로 남아 있다. EU 집행위도 해당 제한이 ‘혼합물에 의도적으로 첨가된 미세플라스틱’을 대상으로 하며, 제품(articles) 자체는 적용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식품 접촉 소재 전반에 대한 규제 체계를 운영하고, 미세비드처럼 특정 용도의 ‘의도적’ 미세플라스틱은 별도 법률로 제한해 왔지만, PP 젖병에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 방출을 직접 겨냥한 연방 차원의 기준이나 표시 규정은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정립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 FDA는 식품 내 미세플라스틱·나노플라스틱에 대해 정보 제공을 확대하는 단계이며, 식품 접촉 소재는 사전 승인·평가 체계로 관리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다.


한국의 정책 과제 - ‘세척기 불검출’이 아니라 ‘젖병 표준검증’이 핵심이 될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쟁점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젖병세척기 사용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된 데서 출발했다. 이후 업체들이 ‘불검출’ 결과를 제품 설명·안내 문구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시험조건 고지의 수준이 소비자 신뢰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부상했다. 소비자원 점검 이후 시험조건을 비교적 충실히 알리는 사례가 늘었지만, 고지의 형식과 범위가 업체마다 달라 ‘같은 불검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비자가 직접 비교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일부 제품에서 모델명·제조연월 등 기본 표시사항의 미비가 확인된 점까지 감안하면, 단순 고지 개선을 넘어 표준화된 표시 기준, 제3자 반복검증, 사후 모니터링 같은 추가적인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세플라스틱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장기간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결과는 논의의 초점을 ‘젖병세척기’에서 ‘젖병’으로 옮길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한국에서도 ‘미세플라스틱 저감·관리’ 관련 입법 과정이 진행되는 만큼, 소비자 접점이 큰 영유아 제품군부터 표준화된 시험법과 표시-정보 공개의 틀을 갖추는 접근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국내외 연구가 제시한 노출 규모와 기전 연구의 진전을 감안하면, PP 젖병의 사용 단계 방출량을 공적 기준으로 측정-비교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지 않는 한 ‘불검출’ 논쟁은 형태만 바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 안전 측면에서 당장 가능한 정책 수단은 ‘표준검증-정보공개-노출저감 가이드’의 결합이며, 개인 차원에서는 노출을 줄이기 위해 유리 젖병을 선택하거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 플라스틱 젖병의 교체 주기를 짧게 잡아(예를 들어 3개월 이내) 사용 마모에 따른 잠재적 방출을 최소화하는 대응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표준검증은 동일한 온도-살균-세척-흔들기 조건에서의 방출량을 비교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고, 정보공개는 사업자가 사용하는 ‘불검출’ 표현의 범위와 검출한계를 소비자가 재현 가능하게 이해하도록 고지하는 것이며, 노출저감 가이드는 연구가 제시한 ‘온도 민감성’ 같은 요인을 바탕으로 안전한 사용 절차를 안내하는 방식이다.


소비자원, 안전기준 강화 요청 - 다음 단계는 젖병 자체의 ‘노출 지도’ 작성

 

소비자원은 이번 결과를 국가기술표준원과 공유하고 위해 요인의 선제적 제거를 위해 젖병세척기 관련 안전기준 강화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시장 신뢰 회복의 관건은 ‘세척기 자체의 안전성 확인’에 더해, 노출의 본류로 지목되는 ‘젖병’ 자체를 대상으로 한 미세플라스틱 방출 시험을 공적 체계로 실시하고 그 결과를 데이터로 축적의 필요성이 있다. 특히 PP 등 플라스틱 젖병은 사용 온도, 살균-세척 방식, 반복 사용에 따라 방출량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시험조건과 표시기준을 함께 표준화하지 않으면 정책 개입의 효과도 제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