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관련 팩트시트를 직접 발표하며 이번 경주 합의의 주요 내용을 국민과 언론에 설명했다. 특히 우라늄 농축·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핵추진 잠수함 승인 등 민감한 사안을 둘러싼 미국 행정부 내 의견 조율에 시간이 걸리면서 팩트시트 확정과 공개가 지연됐다고 밝혔다.
공동 발표문에서 양 정상은 한·미 동맹을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 안보, 번영을 떠받치는 "핵심축"으로 규정하고, 기존 군사동맹을 넘어 경제·산업·통상·원자력·디지털 규범까지 포괄하는 포괄적 동맹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했다.
전략산업 투자와 관세 조정이 결합된 대형 패키지 딜
이번 합의문는 두차례에 걸처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합의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양측은 먼저 조선, 에너지, 반도체, 제약, 핵심 광물, 인공지능·양자컴퓨팅 등 전략 산업에서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확대해 양국 경제안보를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선박 건조 분야에서 1천5백억달러 규모의 한국 투자 프로젝트를 "승인 투자"로 인정했으며, 추가로 2천억달러에 이르는 전략 투자 약정을 양국 대표가 서명할 예정인 양해각서(MOU)에 담기로 했다. 사실상 3천5백억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한국발 대미 투자를 토대로, 미국은 철강·알루미늄 등 기존 관세 구조와 연동된 새로운 관세 체계를 한국에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2025년 4월 2일자 행정명령 14257에 근거한 상호 관세 체계에서, 한국산 원산지 물품에 대해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FTA)이나 최혜국대우(MFN) 관세율과 15퍼센트 중 높은 쪽을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동시에 232조 관세가 부과된 자동차·자동차부품·목재·제재목·목재 가공품의 경우, 한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최종 관세 부담이 15퍼센트를 넘지 않도록 조정한다는 점도 명시했다. 관세율이 15퍼센트 이상인 품목에는 추가 232조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15퍼센트 미만인 품목은 KORUS 또는 MFN 관세와 232조 추가 관세를 합산해 15퍼센트에 맞추는 방식이다.
외환시장 안정 장치를 포함한 금융 측면 안전판
대규모 투자 합의는 필연적으로 외화 수요와 외환시장 변동성을 수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국은 MOU 이행 과정에서 한국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한 장치도 함께 제시했다. 양측은 한국이 한 해에 조달해야 하는 미국 달러 규모를 최대 2백억달러로 제한하고, 가능하면 시장 외 수단을 통해 달러를 조달해 외환시장에 직접적인 부담을 줄이지 않겠다는 방향에 의견을 모았다.
만약 MOU 이행 과정에서 원화의 급격한 변동 등 시장 불안 조짐이 나타날 경우, 한국 정부는 투자 집행 규모와 시기를 조정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미국은 이를 성실히 검토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대규모 대미 투자와 이를 뒷받침할 외화 조달 구조가 한국의 거시건전성과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정치적 합의라고 볼 수 있다.
민간 투자와 상업협력 확대... 항공·전시·중소기업까지 포괄
양 정상은 정부 주도의 전략 투자뿐 아니라 민간 차원의 상업 협력 확대도 환영했다. 한국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동안 미국에 1천5백억달러 규모의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약속한 바 있고, 양국 정부는 이 투자가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최대한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양국은 "바이 아메리카 인 서울(Buy America in Seoul)" 이니셔티브를 통해, 한국 정부가 미국 주정부들과 협력해 매년 미국 기업과 중소기업 제품을 홍보하는 전시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는 한국 시장에서 미국산 제품의 수출을 촉진하는 한편, 양국 기업 간 공급망을 촘촘히 잇는 플랫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비관세장벽·디지털 규범·노동·환경을 아우르는 통상 규범 패키지
양 정상은 이번 합의를 상호 호혜적인 무역·투자 확대를 위한 "상호주의적 통상 패키지"로 규정하고, 연말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동위원회에서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채택하기로 했다. 특히 비관세 장벽, 디지털 무역, 경쟁정책, 지식재산권, 노동과 환경 규범 등 새로운 통상 이슈를 포괄한 점이 특징이다.
자동차 분야에서 한국은 미국 연방자동차안전기준(FMVSS)을 충족하는 미국산 차량의 무수정 수입 물량 상한 5만대를 폐지하고, 배출가스 인증 과정에서도 미국 당국에 제출된 서류 외 추가 서류를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농식품 분야에서는 농업 바이오테크 제품에 대한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미국산 원예 제품을 위한 전담 창구 설치, 특정 용어를 사용하는 미국산 육류·치즈의 시장 접근 유지 등이 포함됐다.
디지털 통상 영역에서는 미국 기업이 한국의 디지털 서비스 규제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고, 네트워크 사용료와 온라인 플랫폼 규제, 위치정보·재보험·개인정보를 포함한 국경 간 데이터 이전을 원활히 하기로 했다. 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전자 전송물에 대한 관세 부과를 금지하는 모라토리엄을 영구화하는 데 협력하겠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경제안보 연계와 공급망 재편 속 한국의 선택
양 정상은 경제와 안보를 연계한 "경제안보 동맹"의 필요성을 재확인하면서, 관세 회피 방지와 비시장적 관행 대응, 대내외 투자 규제 협력, 공공조달에서 동맹국 상호 혜택 보장 등을 통해 공급망과 산업 기반을 함께 지키겠다고 밝혔다. 이는 전략 산업과 필수 자원의 공급망을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겠다는 미국 측 기조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다만 한국 입장에서는 대규모 대미 투자와 관세 협상, 그리고 경제안보를 명분으로 한 정책 공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특정 국가와의 통상 관계나 지역별 공급망 전략을 재조정해야 하는 부담도 커질 수 있다. 향후 구체적인 시행 과정에서 산업별 경쟁력, 국내 일자리, 중소기업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동맹 현대화와 방위비·전력 구조의 구조적 변화
안보 분야에서 미국은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과 한국 방어 공약을 재확인하면서, 핵을 포함한 모든 역량을 활용한 확장억제 제공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양 정상은 핵협의그룹(NCG)을 포함한 기존 협의 메커니즘을 통해 확장억제 운용과 전략 조정을 계속 심화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국내 법적 요건에 따라 가능한 한 조속히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5퍼센트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공유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환영했다. 한국은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장비 2백50억달러를 도입하고, 주한미군에 대한 포괄적 지원을 3백30억달러 규모로 제공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는 한국이 동맹 내에서 더 큰 재정적 부담을 떠안는 대신, 전력 현대화와 작전 통제권 전환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동맹 구조를 재편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양국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연합 방위태세 강화 노력도 계속하기로 했다. 미국의 지원 아래 한국이 북한의 재래식 위협에 대한 연합 방위를 주도할 수 있도록 고도화된 무기체계 도입과 방산 협력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양측은 2006년 이후 축적된 관련 합의를 재확인하며, 모든 역내 위협에 대응한 미군의 재래식 억지 태세를 강화하기로 했다. 사이버 공간과 우주 영역, 인공지능을 활용한 군사 분야 협력도 새로운 동맹 의제로 부상했다.
역내 질서에 대한 메시지
양 정상은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미 공조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두 정상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안정이라는 목표를 재천명하고,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에 대해선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의미 있는 대화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동시에 양측은 일본과의 3각 공조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역내 해양 질서와 대만해협 안정에 대한 입장도 명확히 했다. 국제법에 부합하는 항행·비행의 자유를 지지하고, 모든 국가의 해양 영유권 주장이 국제 해양법 질서에 부합해야 한다는 기존 원칙을 재강조했다. 대만해협 문제에 대해서는 현상 유지에 대한 일방적 변경에 반대하고,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조선·원자력 협력의 의미
이번 합의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조선과 원자력 분야에서의 동맹 협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부분이다. 미국은 한국이 미국 조선소와 인력에 투자해 상선과 군함 건조 능력을 현대화하는 계획을 환영했고, 양국은 정비·수리·개조, 인력 양성, 조선소 현대화, 공급망 회복력 강화를 위한 조선 워킹그룹을 구성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미국 상선과 전투 준비태세를 갖춘 군함의 숫자를 가능한 한 빨리 늘리고, 필요할 경우 미국 선박의 한국 건조까지 검토한다는 구상이 포함됐다.
원자력 분야에서 미국은 양국 간 123협정과 자국 법령을 전제로,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평화적 목적 범위에서 허용하는 절차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미국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했으며, 연료 조달 경로를 포함한 사업 요건을 구체화하기 위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이는 한국이 그동안 숙원 과제로 제기해 온 핵추진 잠수함 도입에 대해 미국이 공식적으로 문을 연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평가와 향후 과제
이번 경주 한·미 정상 합의는 전략 산업 투자, 관세 구조 개편, 외환시장 안정 장치, 디지털·노동·환경 규범, 방위비와 전력 구조, 원자력과 조선 협력까지 한 번에 묶어낸 초대형 패키지라는 점에서 기존 한·미 동맹 협의와는 결이 다르다.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딜" 방식과,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방위 기여 확대 전략이 맞물린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서 이는 경제·산업·안보 전 영역에서 동맹의 위상을 높이는 기회인 동시에, 대규모 재정·투자 부담과 전략적 선택의 폭을 스스로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양면성을 갖는다. 특히 관세·투자·외환·원자력·방위비가 서로 연동된 구조인 만큼, 어느 한 축에서의 이행 지연이나 정치적 변수에 따라 전체 패키지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향후 한국 정부는 이번 합의의 개별 조항이 국내 산업과 노동시장, 재정과 금융 안정, 대외 관계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국회와 산업계, 시민사회와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정책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동시에 한·미 동맹의 질적 업그레이드가 특정 국가와의 갈등 심화로만 비치지 않도록, 포괄적이고 개방적인 지역 질서 형성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외교적 메시지와 정책 수단을 정교하게 조율해 나가는 것이 과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