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보다 급한 청년 비만, 치료제 지원이 ‘지출 절감’으로 돌아온다

청년 비만을 방치하면 더 비싼 합병증 청구서가 온다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를 ‘생존과 연결되는 질환’으로 언급하며 건강보험 적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국민의 일상적 건강 고충을 정책 의제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탈모가 대표적인 삶의 질 이슈라면, 미래 의료비와 보험 재정의 지출 궤적을 좌우할 구조적 위험요인에도 시선이 옮겨가야 한다. 특히 청년층 비만은 10-20년 뒤 건강보험 지출을 크게 흔들 수 있는 변수라는 점에서, 지금부터의 대처가 필요하다.


비만대사수술 급여화가 남긴 정책 교훈-‘1회 지원’에서 ‘지속 관리’로

 

한국은 이미 비만을 개인의 생활습관 문제로만 보지 않고 ‘의료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질병’으로 다룬 경험이 있다. 2019년 1월부터 고도비만 환자에 대한 비만대사수술에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하면서, 체질량지수(BMI) 35 이상 또는 BMI 30 이상이면서 합병증이 동반된 경우 등을 대상으로 지원 범위를 설정했다. 당시의 정책 판단은 비만을 방치할 경우 당뇨병, 심혈관 질환 등 고비용 만성질환으로 연결돼 국가 전체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는 인식에 기반했다.

이제 논쟁의 무대는 약물치료로 옮겨가고 있다. 최근 등장한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논의가 더 복잡한 이유는, 수술과 달리 약물이 효과 유지를 위해 장기 투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재정 당국이 우려하는 대목은 단순히 약값이 아니라, 대상자가 확대될수록 매달 지출되는 고정비가 구조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약물 급여화는 ‘도입 여부’가 아니라 ‘어떤 환자에게, 어떤 조건으로, 어떤 성과를 전제로’ 지원할지 설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해외는 ‘선별 지원’과 ‘접근성 관리’로 방향으로

 

영국은 NICE(국립보건임상연구원)가 세마글루타이드(위고비) 등 비만 치료제의 비용-효과성을 평가해 제한된 조건하에서 사용을 권고하는 체계를 운용하고, NHS는 초기 도입 과정에서 우선순위 설정과 단계적 확대를 병행하고 있다. 일본도 2024년부터 특정 요건을 충족하는 환자에 한해 비만 치료제를 공적 보험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가동하며, 비만을 국가 관리 질환으로 다루는 흐름을 강화했다. 반면 독일은 비만 치료제를 ‘생활습관 약’으로 분류해 공적 보험 급여에서 제외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프랑스도 처방 접근성은 넓히는 동시에 공보험 재정으로는 아직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등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결국 쟁점은 약물치료의 단기 지출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치료를 통해 합병증을 줄여 장기 지출 증가율을 낮출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비만은 합병증의 ‘상위 원인’이고, 비용은 뒤늦게 폭발

 

비만을 재정 문제로 보는 출발점은 합병증의 치료비가 본체라는 사실이다. OECD는 비만과 과체중의 결과를 치료하는 데 OECD 국가들이 건강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지출하고 있다고 경고해 왔고, 이는 한국처럼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에서 더욱 민감한 변수다. 임상 근거도 축적되고 있는데, 비만 또는 과체중이면서 심혈관 질환 병력이 있는 성인(당뇨병 병력은 없는 집단)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세마글루타이드 2.4mg 투여가 주요 심혈관 사건 위험을 낮춘 결과가 보고되며, ‘체중 감량’이 ‘의료비 절감’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경로가 구체화되고 있다.

비용이 중장년기에 집중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험요인이 축적되기 시작하는 청년층에 선제적으로 개입할지 여부가 정책의 타이밍을 좌우한다.


청년 비만은 ‘미래 의료비 청구서’의 선행지표

 

청년층 비만은 ‘지금의 의료비’가 아니라 ‘미래 의료비 청구서’를 앞당기는 변수다.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 성-연령별 비만율(2001-2023) 자료에 따르면 청년(19-39세) 비만율은 2023년 30-39세 남성 50.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성별 나이별로 보면 19-29세 남성 비만율은 2001년 25.5%에서 2023년 43.9%로 18.4%p 증가했고, 19-29세 여성도 2001년 11.0%에서 2023년 22.1%로 11.1%p 늘었다. 30-39세 남성은 2001년 35.0%에서 2023년 50.4%로 15.4%p 상승했으며, 30-39세 여성은 2001년 19.1%에서 2023년 27.3%로 8.2%p 증가했다. 

이 수치는 청년 비만이 일부 집단의 생활습관 문제가 아니라, 노동과 소득생활을 하는 핵심 연령대에서 만성질환 위험요인을 구조적으로 누적시키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젊은 시기의 비만은 평생에 걸친 대사 이상과 심혈관 위험을 끌어올리고, 결과적으로 40-50대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고혈압-당뇨-심혈관 질환의 의료이용을 앞당기는 방식으로 건강보험 지출을 팽창시키기 쉽다.


 

한국형 해법은 ‘고위험군 선별과 치료’가 핵심

 

정답은 ‘전면 급여화’도 ‘전면 배제’도 아니라, 한국 의료체계에 맞춘 정교한 선별과 관리다. 고위험군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되, 일정 기간 사용 뒤 체중·대사 지표 개선 등 객관적 성과가 확인된 경우에만 지원을 유지하는 ‘성과 기반’ 원칙을 제도화하면 불필요한 예산 누수를 줄일 수 있다. 약물만 투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운동·영양·행동 상담을 결합한 다학제 관리 모델을 급여 설계에 포함시키면, 중단 이후 체중 반등 위험을 낮추고 치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여지도 생긴다.


‘나라 살림’ 관점에서 필요한 것은 실증과 협상

 

약물 급여화 논쟁이 재정 논리로 설득되려면, 도입 전후의 의료이용 변화와 합병증 발생률을 추적할 수 있는 데이터 체계가 전제돼야 한다. 동시에 약가 협상과 위험분담 같은 재정 장치를 통해 ‘성과가 나오면 지불하고, 성과가 없으면 비용을 줄이는’ 계약 구조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건강보험이 단순히 비용을 지출하는 제도가 아니라, 미래의 더 큰 지출을 예방하기 위해 투자하는 사회적 보험이라는 본래 목적과도 맞닿아 있다.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더 비싼 청구서가 온다

 

대통령의 ‘탈모’ 언급은 건강보험이 다뤄야 할 질환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지라는 정치적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청년 비만처럼 장기 재정과 국민 건강을 동시에 위협하는 위험요인을 외면한다면 건강보험은 뒤늦게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청년 비만 치료제 지원은 단기 지출이 아니라 장기 재정 안정화를 겨냥한 정책 투자이며, 한국이 이미 비만대사수술 급여화로 보여준 ‘선별-관리’의 경험을 약물치료 영역으로 확장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