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교육청, 튀김·볶음·국을 로봇이 대신

산재 승인 급증, 조리흄 노출, 환기 취약… 구조적 예방과 자동화의 해법

 

부산광역시교육청이 부산·경남권 최초로 금정초·남일고·부산체고 등 3개교 급식실에 다기능 조리로봇을 설치했다. 이번 도입은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서비스로봇 실증사업’에 선정된 시범사업으로, 국비 2억 5천만원을 포함해 총 6억 7천만원 규모다. 실제 급식 라인에서 자동화가 조리 과정의 유해물질 노출과 고강도 업무를 얼마나 줄이는지, 그리고 절감된 인력과 시간을 품질·위생·안전 관리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현장에서 검증한다. 학생들에게 더 안전하고 일관된 급식을 제공할 수 있는지, 학교 급식의 표준을 바꿀 ‘정책 실험’이 시작됐다.

 

최근 5년간 학교 급식 조리사들의 폐암 산업재해 승인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2025년 9월 기준 산재 신청 156건 중 약 85%인 133건이 승인되었고, 2021년에는 신청 13건이 모두 승인되었으며 2023년에는 86건 중 73건이 승인되는 등 높은 승인율이 지속되고 있다. 2023년 급식 종사자 건강검진에서는 14개 시도교육청 24,065명 중 31명(0.13%)이 폐암 확진 판정을 받았고, 서울·경기·충북의 추가 결과를 포함하면 확진자는 52명으로 증가한다. 더 나아가 직업환경의학 연구 결과, 학교 급식 조리사는 사무직 대비 폐암 발생 위험이 1.72배 높으며, 비흡연 여성만 놓고 보면 4.23배까지 높다. 국외 연구에서도 조리 시간이 길수록 폐암 위험이 증가하는 용량-반응 관계가 확인됐다. 이 통계는 ‘사후 보상’ 중심의 체계만으로는 부족하며, 현장의 구조적 예방이 시급함을 시사한다.


왜 지금 개입이 필요한가

 

조리흄의 위험성

 

조리흄(cooking fumes)은 고온에서 기름과 식재료 성분이 분해·변형되며 발생하는 미세입자와 가스의 혼합물이다. 대표적으로 일산화탄소,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 포름알데히드, 아세트알데히드, 아크릴아마이드, 아크롤레인, 벤조[a]피렌 등이 포함된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0년에 조리흄을 인체 발암 추정물질(Group 2A)로 분류했으며, 극미세입자는 호흡기를 통해 체내로 유입되어 기관지와 폐포 상피를 손상시키고 만성 염증과 DNA 손상을 유발해 폐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급식실 작업환경의 구조적 취약

 

급식 조리 담당자는 하루 평균 80인분 이상을 조리하며 하루 2-3시간 동안 고온의 조리흄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학교 식단에서는 튀김과 볶음 공정의 비중이 높아 고농도의 유증기와 연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전국의 시도 교육청의 점검 결과에 따르면, 점검 대상 4,800개 학교 가운데 97%가 환기 성능 미달로 확인되었고, 예산 제약과 유지관리 부실로 고장이 방치되거나 저성능 배기장치가 계속 사용되는 문제가 누적되고 있다.


자동화 모델의 실증: 부산 ‘다기능 조리로봇’ 시범

 

부산광역시교육청은 튀김·볶음·국 공정을 수행하는 전기솥 결합형 다기능 조리로봇을 금정초·남일고·부산체고 등 3개교 급식실에 시범 도입했고, 시연회를 개최했다. 본 사업은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서비스로봇 실증사업 최종과제로 선정되었으며, 부산·경남권 최초 도입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부산광역시교육청 관계자는 3개교 선정 기준과 관련해 학생 수가 많고, 하루 최대 3식을 제공하는 학교를 중심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하여 사람이 아닌 기계가 고온·고노출 공정을 맡도록 하면 직접 노출과 근골격계 부담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서 반복·고강도 작업이 줄어든 만큼 인력을 배식 동선 정비, 조리 전·중·후 위생관리(HACCP 체크리스트 준수), 교차오염 방지와 알레르겐 관리, 조리 온도·시간 표준화, 조리기기 살균·세척 등 ‘질·위생·안전’ 핵심 공정으로 재배치하여 필요한 부분에 더 신경을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자동화 장비의 가열·교반·뚜껑 제어를 현장 표준에 맞춰 운용하면 조리 중 튐·비산과 화상·미끄럼 같은 안전사고 위험을 낮추고 유증기 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론적으로 환기 개선과 자동화를 결합해 고노출 공정을 구조적으로 줄이는 동시에, 남는 여력을 품질관리와 위생·안전에 투입하는 ‘이중효과’를 추구해야 한다.


정책 메시지와 확산 조건

 

정부의 정책 기조인 '산업재해율을 낮추면서도 생산성을 높이는' 목표에 부합하려면, 이번 시범사업이 현장에 안정적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부산광역시교육청은 이미 급식실 환기시설 개선 사업을 추진 중이며, 로봇 시범은 이러한 물리적 개선과 결합될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산업재해 승인율의 상승은 현장의 위험이 이미 현실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사전 예방’ 중심의 구조개혁이다.

 

특히 이번 사업의 핵심은 업무상 질환을 야기할 수 있는 노동을 고온·고노출 공정은 로봇 등 자동화로 치환하여 직접 노출을 줄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복 작업과 중량물 취급, 불리한 작업자세를 줄여 어깨·허리·손목 등 근골격계질환 부담도 함께 낮출 수 있다. 여기에 물리적 개선(조리기구 개선)과 AI를 결합하면, 공정 제어·수요·메뉴 예측·위생·알레르겐 모니터링·배식 동선 최적화와 인체공학적 작업환경 설계를 통해 더 안전한 환경에서 학생들에게 좋은 음식을 조리하고 제공하는 능력이 한층 강화된다.

 

부산광역시교육청의 다기능 조리로봇 시범은 이러한 구조개혁을 실증하는 모델이며, 학교를 넘어 ‘다수 인원에게 조리해 제공해야 하는’ 민간 집단급식과 군 급식으로 확장될 경우 장비 표준화·인증·유지관리 서비스와 데이터 기반 운영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 전국적 확산 여부는 환기 성능 표준 상향, 규모·공정별 맞춤 설계, 유지관리 역량과 총소유비용 관리, 데이터 거버넌스와 AI 윤리 기준, 그리고 건강 데이터의 투명한 축적·활용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