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5일, 중앙정부가 처음으로 선감학원 피해자에 대한 국가책임을 공식화했다. 법무부는 이날 형제복지원 및 선감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소송과 관련해 항소심 및 상고심의 국가 상소를 전면 취하하고, 1심 재판에서도 원칙적으로 상소를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국가가 구조적 인권침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 권리 회복을 위한 실질적 조치에 나섰다는 점에서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선감학원: 일제의 잔재에서 국가 폭력까지 이어진 아동 인권침해의 현장
선감학원은 1942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소년령'을 근거로 설치한 소년 감화시설로, '비행소년' 교화라는 명분 아래 실상은 '부랑아'라는 자의적 기준으로 수천 명의 아동과 청소년을 법적 절차 없이 무차별 수용한 공간이다. 해방 이후에도 이 시설은 경기도가 운영하며 1982년까지 존속했고, 이 과정에서 약 4,700여 명이 수용되었다.

수용 아동들은 염전과 농장 등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됐고, 규율 위반을 이유로 폭행·성폭력·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겪었다. 탈출을 시도한 수백 명은 익사하거나 실종되었으며, 이후 암매장 정황이 드러난 분묘에서는 유해와 단추, 치아 등이 수습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단순한 행정 실패를 넘어, 일제의 통제 방식이 해방 이후 국가 시스템 속에서도 구조적으로 재생산된 결과로 평가된다.
진실규명과 경기도의 단독 대응: 피해자 지원의 출발점
선감학원의 실체는 오랜 시간 가려져 있었지만, 생존자들의 증언과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2022년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선감학원 수용자 전원을 아동 인권침해 피해자로 공식 인정하였다. 이에 경기도는 2023년부터 피해자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위로금과 생활·의료 지원금 지급, 생존자 상담 등 종합적인 지원 체계를 단독으로 운영해왔다.
그러나 수용 경험이 있는 피해자들은 여전히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다수는 문해력 부족, 만성 트라우마, 사회적 고립 등으로 기본적인 사회적 접근조차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복합적 여건 속에서 경기도의 단독 대응에는 한계가 분명했고, 중앙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피해자 단체의 요구와 법률 제정 필요성
2025년 8월 5일 법무부는 선감학원 및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소송과 관련해 항소심과 상고심 상소를 전면 취하하고, 1심 재판에서도 원칙적으로 상소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국가가 구조적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법무부는 선감학원 사건이 형제복지원 사건과 마찬가지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시설에 아동을 강제 수용한 중대한 위법 행위였음을 인정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신속한 권리 구제를 약속했다.
한편, 생존 피해자 다수는 고령에 접어든 상황에서 트라우마와 문해력 부족, 사회적 고립 등으로 인해 법적 권리 행사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포괄적 지원을 담은 별도 법률 제정을 요구하고 있으며, 진실화해위원회 역시 국회에 입법 촉구 의견을 전달한 상태다.
재발 방지를 위한 국가 시스템과 기억의 제도화
선감학원 사건은 단순한 과거사 청산을 넘어, 국가폭력의 구조적 본질을 성찰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예방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보편적 복지나 일반 법제도로는 지원이 불가능한 집단”이라며, 특별법 제정을 통한 신속하고 맞춤형 지원 체계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경기도 또한 “국가가 피해자들의 곁에 함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중앙정부와 협력해 피해자 치유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사회와 공유하고 공동체적 기억으로 승화하기 위해 경기도는 2017년 ‘선감역사박물관’을 개관하였다. 박물관은 수용소 유적을 보존하고, 매년 추모문화제를 개최하며, 피해 생존자의 구술과 증언을 바탕으로 한 전시와 순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생존자들이 직접 해설자로 참여하는 '역사순례길'과 시민이 함께 걷는 ‘인권평화순례 투어’는 단순한 과거사 전시를 넘어 현재의 인권 교육과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적 활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