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근로장려금 재설계 나선다

유인 효과 vs 복지 사각

 

기획재정부는 나라장터를 통해 '근로장려금 효과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 연구'를 발주한 것이 확인되었다. SBS Biz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국회에서도 근로장려금의 효과성을 두고 쟁점이 많았다"며, "근로유인 효과에 대해 의심하는 경우도 있고, 복지 일환으로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는 만큼 근로유인 효과성을 검토해 보는 차원에서 연구용역을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근로장려금이란 무엇인가?

 

근로장려금은 일정 소득 이하의 근로자나 자영업자에게 국가가 현금으로 장려금을 지급해 근로를 유도하고 소득을 보전하는 제도다. 일을 해도 생계가 어려운 '워킹푸어(working poor)' 계층의 생활을 돕고, 저소득층의 노동시장 참여를 촉진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오히려 다른 복지 혜택에서 탈락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근로장려금은 저소득 근로자나 자영업자에게 일정 금액의 현금을 지급하여 노동을 장려하는 제도다. 하지만 수급자가 이 장려금을 받으면, 그 금액이 소득으로 간주되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산정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즉, 근로장려금을 수령했다는 이유만으로 생계급여가 줄거나 아예 탈락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사례로 보는 제도 충돌의 현실

 

※ 아래 사례는 2024년 기준으로 운영 중인 대한민국의 근로장려금 및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한 가상의 사례입니다.

실제 사례를 가정해보자. 시골에 거주하는 1인 가구의 고령자 A씨는 생계급여로 월 40만 원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우유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근로장려금으로 연 120만 원(월평균 10만 원)을 수령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소득인정액이 증가하여 생계급여가 30만 원으로 줄었고, 실질 수입은 거의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했다.

또 다른 가상의 사례로, 도시 거주 3인 가구인 B씨네는 맞벌이 부부로 연 소득이 2,400만 원 수준이다. 근로장려금을 수령하고 있었지만,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지방 토지의 평가액이 상승하면서 가구 재산이 2억 4천만 원을 초과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다음 해에는 근로장려금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동시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재산 기준도 초과하여 생계급여 대상에서도 탈락하게 되었다. B씨 가족은 예상치 못한 복지 공백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근로를 장려한다는 제도의 본래 취지에 반하며, 복지제도 간 충돌을 초래한다. 특히 저소득층에게 "일하면 손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장기적으로 노동시장 참여율과 복지 제도에 대한 신뢰 모두를 저해할 수 있다.


한미 복지제도 비교: EITC vs. 근로장려금

 

미국의 근로장려세액공제(EITC) 제도 역시 저소득 근로자에게 세금 환급 형태로 실질적인 소득을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특히 자녀가 있는 가구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세금 환급을 통해 최저임금 이상의 실질소득을 유도한다. 그러나 자녀가 없는 단독 가구에는 혜택이 적고, 세금 신고가 복잡하여 오지급률이 높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EITC는 세금 환급 방식 특성상 지급 시점이 다음 해로 넘어가게 되어, 당장의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에게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더불어, 환급이 지연되는 구조 속에서 즉각적인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근로 유인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의 근로장려금 제도와 마찬가지로, 이 제도 역시 '노동시장 안에 이미 진입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아직 시장 밖에 있는 계층에게는 실질적인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는 구조적 한계도 함께 지적되고 있다. 다만, EITC는 연방 차원에서는 소득에 따른 세금 환급이 다른 복지 프로그램의 수급 자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부 주(州) 단위의 복지 프로그램에서는 EITC로 인한 소득 증가가 수급 자격 산정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주별 규정 확인이 필요하다.

반면 한국의 근로장려금은 세금 환급이 아닌 현금 지급 방식이며, 신청 절차가 비교적 단순하고 접근성이 높다. 하지만 지급액이 적고, 생계급여 등 타 복지제도와 충돌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어 근로 유인을 저해한다. 특히 재산 기준이 엄격하여 시골 고령자, 영세 자영업자 등이 제도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한국은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는 순간 복지급여가 급격히 줄거나 전액 중단되는 구조로 되어 있어, 수급자가 추가 소득을 꺼리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이러한 급여 절벽(cliff effect) 현상은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해외 사례: 미국과 영국의 '테이퍼링' 제도

 

미국과 영국은 이를 완화하기 위해 소득 증가에 따라 복지급여를 점진적으로 감액하는 '테이퍼링(tapering)' 구조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EITC는 세금 환급 방식이지만, 소득이 일정 구간을 초과하면 환급액이 점진적으로 줄어드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추가 근로에 대한 실질 소득 증가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영국의 '유니버설 크레딧(Universal Credit)' 제도는 테이퍼링 방식의 대표적인 예다. 일정 기준 이하의 소득은 전액 수령하고, 초과분에 대해서는 일정 비율(예: 55%)만큼 복지급여에서 차감된다. 예를 들어, 추가로 100파운드를 벌면 복지급여는 55파운드 줄고, 본인은 45파운드를 더 가져가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복지수급자에게 추가 소득을 꺼릴 이유를 줄이고, 근로에 대한 실질적인 유인을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일하면 손해"가 아닌 "일할수록 이득"이라는 긍정적인 인식이 가능해진다.


제도 개선을 위한 국내 연구와 제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시행한 김문정, 최인혁, 김정환의 『근로빈곤층의 근로유인 제고를 위한 소득보장제도 개선 방향』(2024)은 이러한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근로장려세제의 점감구간 확대와 복잡성,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충급여 원칙과의 상충 문제를 짚으며, 오히려 제도가 노동 유인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영국의 유니버설 크레딧 제도를 참고하여, 급여 절벽을 완화하는 통합적이고 점진적인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유사한 방식의 '소득 감액 완충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일정 수준까지는 소득이 증가해도 급여를 유지하고, 그 이후부터는 점진적으로 감액하는 구조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고 빈곤 탈출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노동시장 밖에 있는 사람들이 노동시장 안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유인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함을 시사한다. 제도의 효과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폐지하거나 축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제도의 설계를 정교하게 다듬어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들에게 노동시장 참여를 유인하는 복지'로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려인가, 제한인가: 근로장려금 제도가 던지는 질문

 

복지제도는 단순한 현금 이전이 아니라, 국민에게 삶의 방향과 신호를 제공하는 제도적 언어다. 제도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거나 상충할 때, 사회는 혼란을 겪고 제도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지금의 근로장려금은 그런 경계선 위에 있다. 노동을 장려한다는 명분 아래 설계되었지만, 실제로는 생계급여를 깎고 복지 자격에서 탈락시키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노동시장 안에 들어온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생기면 오히려 지원이 줄어드는 현재의 시스템은 ‘일하면 손해’라는 인식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진정한 복지는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에게는 실질적인 유인을, 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는 안정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이중적 구조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근로장려금 제도는 폐지나 축소가 아닌 정교한 재설계를 통해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다시 구성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의 외형보다 철학의 정비이며, ‘근로’라는 말의 무게에 걸맞은 설계다. 장려는 유인이 작동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름만 남고 목적은 퇴색된 제도가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