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불쇼” 시청자와 출연진 연말의 4억 원 기부처 선정

훈훈한 기부 하지만 유튜브 투표가 드러낸 복지 사각지대

 

지난 26일 인기 유튜브 채널 ‘매불쇼’가 시청자들과 함께 모은 기부금 4억여 원의 사용처를 시청자 투표로 정하고, 상위 두 단체를 선정해 지원하기로 했다. 이번 모금은 시청자 슈퍼챗 1억 7,562만 원에 은현장 2억 원, 황희두 1,000만 원, 곽수산 300만 원, 최욱 1,200만 원이 더해져 총 4억 62만 원이 모였다. 연말에 훈훈한 소식이었지만, 이번 투표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공적 복지제도가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는 지점이 어디인지도 또렷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거와 일자리, 돌봄과 정보 접근처럼 일상 기반을 좌우하는 요소들이 여전히 ‘제도 밖 비용’과 ‘절차의 장벽’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투표 결과에 반영됐다.


 

“홀로서기”가 시작되는 순간-자립준비청년에 집중된 불안

 

투표 1위는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을 돕는 단체 ‘따뜻한 하루’였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 등에서 지내다 만 18세가 되어 사회로 나와야 하는 청년을 뜻한다. 정부가 정착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주거와 일자리, 심리적 고립 같은 문제가 동시에 밀려오는 상황에서 단일 항목 지원만으로는 공백이 생기기 쉽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이 방을 구하고 공과금을 내는 법부터 익혀야 하는 현실은 ‘돈’과 ‘생활기술’, ‘관계망’이 함께 결핍될 때 위기가 커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기부금은 이들에게 필요한 맞춤형 생활 물품이나 취업 준비 비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치료비 밖에서 무너지는 가계-소아암 가족이 겪는 ‘숨은 비용’

 

2위는 소아암 환아와 가족을 지원하는 ‘한빛사랑후원회’가 차지했다. 건강보험을 통해 직접적인 치료비는 상당 부분 지원되더라도, 병원비 외의 비용은 가족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방 거주 가족이 서울 병원 근처에 머물며 지출하는 숙박비와 교통비, 간병과 치료 동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득 공백이 대표적이다. 이 단체는 쉼터 제공과 정서 지원을 통해 가족이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다고 설명한다. 투표 결과는 의료비 지원의 확대만으로는 위기 가정을 충분히 보호하기 어렵고, 생활비와 돌봄 공백을 함께 다루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환기한다.


정보의 장벽이 곧 권리의 장벽-루게릭병과 발달장애 지원의 공통분모

 

3위는 루게릭병 환우를 돕는 ‘승일희망재단’, 4위는 발달장애인의 정보 접근을 돕는 ‘피치마켓’이 올랐다. 특히 피치마켓은 발달장애인이나 경계선 지능인이 세상 정보를 쉽게 이해하도록 ‘쉬운 글 도서’를 제작한다. 복지 혜택이 있어도 신청서와 안내문이 지나치게 어렵거나 복잡해 포기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제도는 존재해도 체감 가능한 권리로 이어지기 어렵다. 은행 계약서나 병원 동의서 같은 핵심 문서를 이해하기 쉬운 그림과 설명으로 바꾸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은, ‘접근 가능한 정보’가 돌봄 정책의 주변부가 아니라 핵심 인프라라는 점을 시사한다.


‘신청주의’와 ‘칸막이’의 비용-기부 투표가 던진 제도 개선 신호

 

이번 투표가 보여준 공통된 키워드는 ‘제도는 있으나 도달이 어렵다’는 현실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직접 서류를 챙겨 증명해야 하는 신청주의는, 위기 상황일수록 더 높은 행정 비용과 심리적 부담을 요구한다. 부서별로 지원이 나뉜 칸막이 구조는 건강, 주거, 교육, 돌봄이 동시에 얽힌 문제를 분절적으로 다루게 만들고, 당사자는 각 제도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 ‘조정자’ 역할을 떠맡게 된다.

정책적 함의는 분명하다. 첫째, 위기 가정과 취약계층에 대한 선제적 발굴과 연계가 강화돼야 한다. 둘째, 주거-일자리-심리 지원처럼 생활 기반을 묶어 설계하는 통합적 지원 방식이 필요하다. 셋째, 쉬운 안내문과 이해 가능한 절차처럼 정보 접근성을 제도의 기본값으로 두고, 신청 과정에서의 탈락을 줄이는 방향으로 행정 설계를 재점검해야 한다.

유튜브 기반의 기부 투표는 공공복지의 부족분을 메우는 방식으로만 읽히기 쉽지만, 이번 사례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가장 큰 불안을 느끼고 어떤 공백을 우선순위로 체감하는지 보여주는 정책 신호에 가깝다. 민간의 참여가 지속가능하려면, 그 결과가 공공정책의 개선으로 환류되는 구조가 뒤따라야 한다. 기부가 ‘선의의 응급처치’에 그치지 않고 제도 설계의 촘촘함을 높이는 출발점이 되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투표 결과가 던진 질문을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