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인구소멸 위기에 놓인 농어촌에서 기본소득 성격의 소득지원을 통해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핵심 농정 공약이자 국정과제다. 정부는 이 사업을 통해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쇠퇴하는 농어촌의 생활기반을 보완하고, 일정 수준의 소득 안전망을 제공하겠다는 목표 아래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년간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사업의 소관 부처는 농림축산식품부와 기획재정부로, 두 부처가 공동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시행을 총괄한다.
시범사업 대상은 법적으로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69개 군 가운데 7개 군으로 한정된다. 정부는 애초 6개 내외 시범지역을 공모 방식으로 선정하겠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경기 연천, 강원 정선, 충남 청양, 전북 순창, 전남 신안, 경북 영양, 경남 남해 등 7개 군이 최종 시범지역으로 결정됐다. 이들 지역에 주민등록을 두고 실거주하는 주민은 나이, 소득, 직업과 관계없이 모두 지급 대상이 된다.
지급 방식은 월 15만 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2년간 제공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으며,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역화폐는 해당 군 지역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중앙정부의 소득 지원이 곧바로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매출로 연결되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농어촌 주민의 공익적 기여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는 동시에, 인구 유출을 억제하고 지역경제의 선순환을 유도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나아가 이 시범사업은 장기적으로 전국 단위 기본소득 도입 가능성을 검증하는 정책실험의 성격도 갖는다.
국비 40 대 지방비 60, ‘무늬만 국비사업’ 논란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둘러싼 핵심 갈등은 국비 40%, 지방비 60%라는 재원 분담 구조에서 비롯된다. 정부 안에 따르면 총사업비 중 40%만 중앙정부가 부담하고, 나머지 60%는 시도 30%, 군 30%로 다시 나눠 지방정부가 책임지는 방식이다. 겉으로는 중앙과 지방이 공동으로 책임을 나누는 구조처럼 보이지만, 실제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 재정 여력이 취약한 지방에 부담을 과도하게 전가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사업의 가장 심각한 제도적 문제는 정작 지원이 가장 절실한 소멸위기 군일수록 재정부담 때문에 사업 신청조차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군 대부분은 자체 수입 기반이 취약해 정부가 요구한 기초지자체 분담금 30%를 감당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공모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출발선 밖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즉, 재정자립도가 낮은 농어촌 지자체에게는 매년 상당한 수준의 지방비를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 자체가 가장 큰 진입 장벽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일부 지자체는 애초에 사업 참여를 포기하거나, 광역단체의 재원 분담을 둘러싸고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경남의 경우 도가 당초 제시된 도비 30% 분담이 어렵다며 18%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했고,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는 도비 30%를 확보하지 못하면 국비 배정을 보류한다는 부대 의견까지 붙으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광역단체의 재정 판단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시범사업 참여 여부를 좌우한다는 점도 구조적 문제로 지적된다. 시범사업 신청 시 광역단체의 재원 확약서 제출이 필수 조건으로 요구되면서, 기초지자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도 차원의 결정이 사실상 최종 관문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남도의회 농해양수산위원회가 도비 분담분 126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다시 복원한 사례는, 이 사업이 정치·재정적 갈등에 얼마나 취약한 구조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재원 구조 탓에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국비사업’이 아니라 ‘지자체 사업’에 가깝다는 비판도 거세다. 국비 비율은 40%에 그치는 반면 나머지 60%는 시도와 군이 부담해야 하므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일수록 기존 예산을 줄이거나 다른 사업을 포기해야만 시범사업 참여가 가능해진다. 특히 농민수당 등 기존 농정 예산을 축소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에 재원을 돌리려 한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농민 단체와 주민들 사이에서 반발도 커지고 있다. 특정 시범지역 주민에게는 기본소득이 지급되는 반면, 인근 지역 농민들은 농민수당이 삭감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정책의 정당성과 수용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제한된 규모와 시범지역 쏠림, ‘빨대 효과’ 우려
시범사업의 규모가 전국 농어촌 인구의 약 2%에 그친다는 점도 이 사업의 중대한 한계로 꼽힌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인구감소지역 69개 군 가운데 6개 내외, 실제로는 7개 군만을 대상으로 하는 극히 제한적인 실험으로, 국정과제로 선정된 사업치고는 규모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지적이다. 이 정도 범위에서는 농어촌 기본소득의 실질적 효과와 부작용을 종합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함께 나온다.
선정·집행 과정에서 시범지역과 비시범지역 간 갈등이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우려를 키운다. 시범지역 선정 단계에서는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기 쉽고, 선정 이후에는 지원을 받는 시범지역과 그렇지 못한 주변 지역 사이에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구소멸 위기에 놓인 농어촌이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극소수 지역에만 혜택이 집중되는 시범사업 구조는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시범지역으로의 인구 쏠림과 위장 전입 등 이른바 ‘빨대 효과’에 대한 우려도 크다. 시범지역에 거주만 하면 모든 주민에게 월 15만 원의 지역화폐가 지급되는 구조인 만큼, 인근 농어촌에서 시범지역으로 주민등록을 옮기는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통계상 시범지역의 인구 감소율을 완화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지만, 동시에 주변 농어촌의 인구 유출과 소멸 위험을 더 키울 수 있다. 생활 기반은 그대로 둔 채 주소만 옮기는 ‘위장 전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다.
시범지역 내부에서도 물가 상승과 소비 쏠림 등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일정 기간 동안 상당한 수준의 현금성 지원이 한꺼번에 공급될 경우, 일부 상점이나 업종에 소비가 집중되거나 단기적인 가격 상승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본래 목표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부분으로, 보다 정교한 사전 분석과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럼에도 정부는 시범사업의 전면 실시나 단계적 확대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계획상으로는 시범사업의 효과를 검증해 본사업 추진 방향을 검토한다는 원론적 설명만 있을 뿐, 언제까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어떤 방식으로 확대 여부를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 일정은 비어 있다. 이 때문에 다수 농어촌 지역에서는 이 사업이 ‘선택받은 극소수 지역만 혜택을 보는 사업’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 커지고 있다.
지속가능한 기본소득 실험을 위한 조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농정과 지역정책의 방향을 기본소득 실험으로 전환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이면서, 설계 미비가 지속될 경우 갈등을 키우는 위험한 실험이 될 수 있다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다. 농어촌을 단순한 보조금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공익적 기여에 대한 보상과 지역경제 순환의 주체로 재위치시키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는 분명하지만, 현재의 재원 구조와 한정된 규모로는 그 효과를 온전히 증명하기 어렵다는 점이 한계로 남는다.
지속가능한 실험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국비 비율을 높이고 지방비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재정 구조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국비 40%, 지방비 60%라는 현 구조는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일수록 참여 문턱을 더 높이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어, 인구소멸 위기에 놓인 취약 지역을 우선 지원한다는 정책 취지와 충돌한다. 국비 비율을 상향 조정하고, 농민수당 등 기존 농정 정책과의 관계를 명확히 정리해 새로운 기본소득 실험이 기존 권리의 축소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시범사업의 평가 기준과 단계적 확대 로드맵을 제시해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를 높여야 한다. 현재와 같이 전체 농어촌 인구의 2% 안팎만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 실험으로는, 농어촌 기본소득의 효과와 부작용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일정 기간의 시범사업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단계적 확대와 전면 시행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원칙,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적용될 평가 지표와 일정이 구체적으로 공유되어야 지역 간 갈등과 불신을 줄일 수 있다.
셋째, 시범지역과 비시범지역 간 형평성을 보완할 정책 장치도 병행돼야 한다. 시범사업의 목적이 인구소멸 위기 해소와 지역 간 격차 완화에 있다면, 시범지역과 비시범지역 간 격차를 되레 확대시키는 결과는 피해야 한다. 인근 지역과의 연계 사업, 시범사업 지역 외 다른 농어촌을 대상으로 한 보완적 지원 정책, 향후 확대 시 우선순위 원칙 등을 함께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농어촌 기본소득 제도화의 출발점이 될지, 재정 갈등과 형평성 논란만 남기는 실패 사례로 기록될지는 중앙정부의 책임 있는 재정 역할과 정책 설계 능력, 그리고 농어촌 주민과의 충분한 소통에 달려 있다. 인구소멸 위기 대응과 기본소득 실험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이해득실을 넘어선 중장기적 관점에서 제도 설계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