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인프라가 멈췄다

국가 행정전산망의 취약성

 

[요약]

384개 UPS 배터리 전소로 647개 행정서비스 동시 중단. 10월 1일 오전 10시 기준 99개 복구, 전소 96개는 대구센터 이전에 최소 4주 전망. 인사혁신처 등 클라우드에 저장된 자료 영구소실 가능성 있어

 

 

정부 행정·업무 시스템 647개가 중단됐고, 10월 1일 오전 10시 기준 99개(약 15.3%)만 복구됐다. 9월 26일 밤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정부 디지털 인프라가 광범위하게 멈췄다. 무정전 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시작된 불은 전산실 한층을 무력화했고, 정부24와 모바일 신분증, 우체국 금융·택배, 국민신문고, 119 다매체 신고 등 핵심 대민 서비스에 연쇄 장애를 일으켰다. 이번 사태는 ‘전자정부’의 심장부가 단일 사고에 취약하다는 사실과, 전산망 이중화의 공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다시 드러냈다. 현재 복구된 주요 서비스는 인터넷우체국·우편물류, 보건복지 포털 ‘복지로’와 ‘사회보장정보포털’, 통계청 ‘나라통계2.0’과 ‘통계분류포털’ 등이다.


화재 피해 및 시스템 마비

 

2025년 9월 26일 오후 8시 20분경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본원 5층 전산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UPS 리튬이온 배터리 이설 중 단자 분리 스파크로 열폭주가 일어났고, 전산실 내부 온도는 약 160도까지 치솟아 진화에 22시간이 걸렸다. 이로 인해 UPS 배터리팩 384개가 전소하고 동일 구역의 일부 서버·네트워크 장비가 손상됐으며, 정부 행정·업무 시스템 647개가 동시에 중단됐다(직접 소실 96개, 보호 목적 선제 중단 551개). 주요 대민 서비스로는 정부24 민원발급, 우체국 금융·택배 일부 거래, 모바일 신분증 발급·인증, 국민신문고 민원 접수, 119 문자·영상 등 다매체 신고, 공무원 내부 업무망 ‘온나라’ 등이 영향을 받았다.


데이터 영구 소실 가능성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는 신규 데이터를 즉시 백업하지 않아 영구 소실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행안부 장관은 사실상 이를 인정하는 취지로 답변했으며 국가보훈부는 국립묘지 안장 신청의 경우 9월 한 달 자료가 사라졌다고 보고했다.

특히 공통 클라우드 저장소 ‘G드라이브’가 손상되면서 일부 기관의 데이터가 영구 소실된 정황이 확인됐다. 인사혁신처는 모든 업무자료를 G드라이브에만 저장·활용해 온 탓에 전 부서 업무자료 손실 가능성을 보고 대응에 나섰다. 행정안전부는 월말 이관 대상 데이터 가운데 일부가 9월 1일부터 26일까지 유실된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고, 일부 공공 서비스에서는 약 한 달치 데이터가 완전히 사라진 사례가 발생했다. 추가 소실 사례로는 정부 도서관리시스템과 통계청 근무성적평가 처리 시스템 등이 확인됐다. 국정자원 본원은 중요도에 따라 실시간에서 최대 1주 주기로 백업한 뒤 월 1회 광주 분원으로 이관하는 구조인데, 이번 화재로 본원 내 원본과 백업이 모두 소실된 서비스는 8월 데이터만 남게 됐다. 인사혁신처는 보안상 업무용 PC가 재부팅 시 초기화되는 구조여서 로컬 저장으로 대체할 수 없었고, 현재 사내망·이메일·홈페이지에 남은 자료를 취합하고 PC에 남은 최근 1개월 자료를 복구해 임시로 업무자료를 재구성하고 있다.


구조적 취약 – ‘이중화 공백’과 예산의 역설

 

구조적 취약성도 분명해졌다. 센터 간 서로 시스템이 다운되면 백업해주는 시스템이 부재한 사실상 단일 거점 체계여서, 사고 구간이 멈추면 즉시 대체가 어려웠다. 재해복구(DR) 투자는 2025년 총지출 대비 약 0.5%에 그쳤고 대전–공주 이원화 네트워크 예산 요구는 정부 조정 과정에서 크게 삭감됐다. 다중 재난 대비 ‘최후의 보루’를 표방한 공주센터 역시 사업 지연과 축소가 반복됐다. 2026년 편성에서도 이중화 관련 예산 감액·삭감 논란이 이어지며 제도와 예산의 전면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인프라’는 성과 체감이 낮아 예산과 관리가 후순위로 밀리고, 책임 주체가 분산돼 선제 투자와 상시 관리가 지연되는 구조적 딜레마가 여전하다.


결론

 

한 번의 배터리 스파크가 국가 디지털 서비스 전반을 흔들었다. 이번 사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리스크를 얼마나 예상하고 분산했는가’의 문제다. AI시대에 전상망의 이중화 및 삼중화는 비용이 아니라 보험이며, 국가의 안전보장 신뢰의 최소조건이다. 특히 성과가 눈에 잘 띄지 않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는 정치와 예산에서 후순위로 밀리기 쉽다. 이 영역에 대한 상시 투자와 관리 책임을 법·제도로 명확히 하고, 예산의 우선순위 조정이 동시에 이뤄질 때에만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빠른 복구를 넘어, ‘다시는 멈추지 않는’ 정부 디지털 안전망의 설계다. 특히 AI 시대로의 전환 속에 행정시스템 전반이 전산화되면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아직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인 만큼, 이러한 디지털 인프라를 국가안보와 국민 안전의 핵심 기반으로 보고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전소된 96개 시스템은 대구센터로 이전해 재구축하는 데 최소 4주가 걸릴 전망이며(정보자원 준비 2주와 시스템 구축 2주 기준), 나머지 551개는 네트워크·보안 장비 정상화에 따라 순차 가동된다. 추석 연휴를 앞둔 민원 수요를 감안하면 국민신문고 등 일부 서비스의 지연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