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대안] 공정한 경쟁, 인간다운 삶 – 최저임금 보편 적용의 길

편법을 막고 공정 경쟁을 위한 최저임금의 재설계 필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5월 26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수고용 및 플랫폼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미지급 실태를 고발하며 고용노동부에 집단 진정을 접수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시급 8,220원 최저임금 사각지대’라는 제목 아래 진행됐으며, 학습지 교사, 배달노동자, 가전 방문점검 노동자 등 각계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플랫폼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 현실을 증언했다.

 

“사장님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다”

 

민주노총은 “플랫폼과 특수고용 구조 속에서 이들 노동자들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최저임금의 보호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대기·이동·감정노동과 같은 ‘공짜노동’이 만연하고, 플랫폼의 통제로 인해 사용자 책임은 사라진 채 모든 부담이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날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한 배달노동자는 월 122시간을 일해 150만 원을 벌지만, 차량 유지비, 통신비, 식비 등으로 50만 원을 지출한 후의 시급은 8,220원 수준으로 최저임금인 10,030원(2025년 기준)에 한참 못 미쳤다. 또 다른 학습지 노동자의 경우 공제 후 실질 시급이 7,168원으로 나타났다.

 

“업무비용·감정노동 다 부담, 법적 보호는 제로”

 

김순옥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고객에게 선물까지 사비로 부담하고, 교통비, 주차비, 심지어 배까지 타는 상황도 있지만 아무런 보상이 없다”며, “한 달 내내 일해도 100만 원도 손에 쥐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김문성 배달플랫폼노조 북서울지부장은 “최저 배달료는 2,200원까지 내려갔다”며 “최저임금 미만의 소득을 메꾸기 위해 하루 12~13시간, 주당 80시간 이상 노동하는 일이 일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뉴욕시와 이탈리아의 사례를 언급하며 “정부가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최저임금을 확대 적용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제도적 방치 끝내야…노동자성 실질 인정 촉구”

 

민주노총은 “형식적 고용형태가 아닌, 실질적인 노동관계를 기준으로 최저임금 제도가 적용되어야 한다”며 “업무비용 전가와 사회보험 회피, 공짜노동 실태를 조사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주휴수당 및 업무관련 고정비를 고려한 실질 시급 기준 도입을 제안하며, 고용노동부와 최저임금위원회의 책임 있는 논의를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특고·플랫폼은 새로운 고용형태일 뿐, 노동의 대가는 정당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며,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이를 첫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최저임금법의 적용 범위와 한계

현행 최저임금법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현행 최저임금법은 그 적용 범위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명확히 제한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제도개선 연구회는 "현행 최저임금법은 그 적용 범위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정하고 있어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는 특수형태종사자나 플랫폼종사자에게 임금결정 방식의 특수성을 이유로 최저임금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명시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존재한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를 좁게 해석하면 위 연구회의 해석처럼 제한적 적용이 가능하나, 넓게 해석할 경우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고용형태종사자 또한 사용자의 지휘·명령 아래 일정한 근로를 제공하는 만큼 근로자성 인정을 통해 최저임금 적용이 가능하다는 법적 해석도 존재한다.

 

도급제 예외 조항, 해석의 여지와 적용 가능성

 

최저임금법 제5조 3항은 "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하여져 있는 경우로서 제1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른 시행령 제4조는 "근로시간을 파악하기 어렵거나 그 밖에 같은 조 제1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되면 해당 근로자의 생산고 또는 업적의 일정단위에 의하여 최저임금액을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행 법령 체계 내에서도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에 대해 별도 기준의 최저임금을 설정할 수 있는 법적 가능성이 열려 있으며, 정부와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체적 의지와 정책 방향에 따라 제도화 여부가 좌우될 수 있다. 실제 적용은 단순한 법적 가능성만으로는 이뤄지기 어렵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부와 위원회의 의지와 실행력이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세계는 어떻게 특고 노동자를 보호하나?

뉴욕, 프랑스, EU의 혁신적 접근

 

전 세계 각국은 플랫폼 노동의 특성을 고려한 최저임금 제도를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다. 미국 뉴욕시는 배달 대기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고 연료비 등을 고려한 최저임금 보장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시애틀시는 '페이 업(Pay Up)' 정책을 통해 주행거리와 비용을 포함한 포괄적 임금 체계를 마련했다.

뉴욕시의 제도는 2023년 6월부터 시행되었으며, 배달 노동자에게 시간당 17.96달러 이상의 임금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정책은 대기시간과 배달 준비시간을 포함해 실질 노동시간을 확대 정의하며, 배달노동자가 플랫폼에서 겪는 공백시간도 임금 산정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의 경우 2023년 주요 배달 플랫폼들이 라이더들과의 노사협의 끝에, 시간당 최소 11.75유로를 보장하는 업계 합의에 도달했다. 이는 법정 최저임금인 11.27유로를 웃도는 수준으로, 라이더의 소득 안정뿐 아니라 해고 방지 및 항의권 보장 등 고용 안정 장치도 함께 도입되었다. 특히 이 합의는 기존 플랫폼뿐 아니라 앞으로 프랑스 시장에 진입할 미래의 플랫폼 사업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EU는 2024년 3월 플랫폼 노동 지침을 최종 승인하면서 '고용 추정(presumption of employment)' 원칙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플랫폼 노동자는 원칙적으로 고용된 것으로 간주되며, 독립계약자임을 주장하고자 할 경우 플랫폼 측이 이를 입증해야 한다. 이 지침은 회원국이 2년 내에 국내법으로 반영해야 하며, 플랫폼 노동자 약 2,80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최저임금 미달 상태라는 실태조사 결과가 정책 배경이 되었다.

 

프랑스와 EU는 특히 알고리즘에 의한 노동자 통제 문제도 함께 다루며, 데이터의 투명성과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알고리즘을 통한 평가와 해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에 대한 이의제기권 보장 등이 정책에 포함되었다.

 

한국에 주는 정책적 시사점

 

이러한 해외 사례들을 바탕으로 한국에서도 다음과 같은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

  1. 실질 노동시간 기반의 시급 계산: 단순 노동시간이 아닌 대기시간, 이동시간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시간 개념 도입. 뉴욕시와 EU 사례처럼 '실제 일한 시간'의 재정의가 핵심이다.

  2. 업무비용 반영 최저임금 기준 설정: 연료비, 통신비, 차량유지비 등 노동자가 실제 부담하는 비용을 시급 산정에 반영. 뉴욕시가 이를 최저임금 기준에 명시한 사례는 선례가 된다.

  3. 법적 지위 명확화 및 고용추정 원칙 도입: '직원 유사 노동자' 등의 새로운 지위를 법제화하고, EU처럼 플랫폼 노동자를 원칙적으로 고용된 것으로 간주하는 고용추정(presumption of employment)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 이는 입증책임을 사용자 측에 두어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는 조치다.

  4. 플랫폼 데이터 공개 의무화: 평균 작업시간, 이동거리 등 임금산정에 필요한 데이터를 플랫폼이 투명하게 제공하도록 법적 의무 부여. 이는 임금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기반이다.

  5. 노사정 협의체 구성 및 업종별 특화 제도 도입: 업종의 특성을 반영한 차등 적용과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한 제도 설계 추진. 프랑스처럼 업계 단위의 합의가 미래에 진입할 사업자에게도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플랫폼 노동자의 최저임금 보장이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한국도 특고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 임금보장 정책을 조속히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이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생계에 대한 최소한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노동자 보호뿐만 아니라, 기업 간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최저임금을 보편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일부 기업이 인건비 절감을 명분으로 법망을 피해가는 편법을 차단하고, 모든 기업이 같은 기준 아래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