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이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총 5,052억 원 규모의 대형 연구개발 사업을 통해 국산 mRNA 백신 개발에 본격 착수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코로나19 백신 플랫폼을 기반으로 차기 팬데믹 대응 역량 확보를 주요 목표로 삼고 있으며, 한국의 독자적인 백신 생산 및 공급 능력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백신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mRNA 백신을 개발, 생산, 유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팬데믹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을 신속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사업은 비임상 단계부터 임상 3상까지 백신 개발의 모든 단계를 체계적으로 지원한다. 2025년부터 비임상시험 과제 4개가 본격적으로 착수되며, 단계별로 심사 및 평가를 거쳐 효율적인 개발과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mRNA 백신 플랫폼 기술 확보를 통해 새로운 팬데믹이 발생하더라도 100~200일 내에 백신을 개발하고 공급할 수 있는 대응 체계를 구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기술 이전, 제조 기반 확충, 유통망 개선 등 백신 생태계 전반에 대한 인프라 정비도 병행된다. 또한 코로나19뿐 아니라 다양한 감염병과 암 백신, 희귀질환 치료제 등 미래를 선도할 첨단 바이오 의약품 개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다.
전통 백신과의 차별성: 속도와 유연성에서 앞서가는 mRNA 기술
기존의 전통적인 백신 방식에는 생백신(예: 홍역, 풍진, 수두), 사백신(예: 소아마비, A형 간염, 인플루엔자), 단백질 서브유닛 백신(예: B형 간염, HPV 백신), 톡소이드 백신(예: 파상풍, 디프테리아) 등이 있으며, 이들은 바이러스나 병원체를 직접 배양하거나 처리하여 항원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백신은 생산 과정이 복잡하고 대량 생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백신 개발에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수년에 이르며, 규제 및 임상 절차를 포함한 상용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특히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할 경우 기존 플랫폼으로는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반면 mRNA 백신은 바이러스 단백질을 암호화한 유전 정보를 합성해 인체 세포에 주입함으로써, 세포가 스스로 항원을 생성하도록 유도한다. 이 방식은 백신 설계와 생산 속도가 빠르며, 유연하게 변형이 가능해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데 효과적이다. 팬데믹처럼 시급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속도가 결정적인 경쟁력이 될 수 있다. mRNA 플랫폼은 감염병뿐 아니라 암, 자가면역질환, 희귀질환 등 다양한 질환 영역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학적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초기 mRNA 백신은 극저온 유통이 필요해 유통 인프라에 큰 부담을 주었으나, 기술 개선으로 제약이 완화되고 있다. 2021년 기준 화이자-BioNTech 백신은 영하 70도에서 보관해야 했지만, 이후 제형 개선을 통해 2~8도에서도 최대 31일까지 보관이 가능하게 되었다. 국내 기업 디엑스앤브이엑스 또한 상온에서 장기 보관 가능한 mRNA 백신 원료 및 생산 공정을 개발 중이며, 이는 향후 유통 효율성과 글로벌 공급 역량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같은 유통 안정성의 개선은 저개발국 및 중저소득국(LMIC)으로의 백신 접근성을 확대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기술적 진전으로 평가된다.
mRNA 기술의 기반: 합성 생물학과 전달 플랫폼의 발전
mRNA 백신의 발전은 유전자 편집, 합성 RNA 기술, 전달 플랫폼 등 생명과학의 다방면 기술 축적의 결과이다. 특히 CRISPR-Cas9과 같은 정밀 유전자 편집 기술은 직접적으로 백신 생산에 사용되지는 않지만, 병원체 분석과 면역 반응 타겟 연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다. 또한 리보핵산(RNA)의 안정성을 높이는 화학적 변형 기술과 mRNA를 세포 내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리피드 나노입자(LNP) 기술은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이 외에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백신 설계 자동화, 고속 대량합성 기술, 자동화된 정제 공정 등도 mRNA 백신 개발의 속도와 품질을 혁신적으로 개선시키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mRNA 플랫폼을 감염병 대응 도구를 넘어 미래의 의료기술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지만, 정부의 지속적 투자와 민간의 기술 축적이 병행될 경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국제 비교: 미국의 백신 전략과 예산 불안정의 경고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백신 접종 안전성 모니터링과 공중보건 지침을 총괄하며, 백신 연구개발은 주로 국립보건원(NIH)과 그 산하 NIAID(알레르기 및 감염병연구소)가 주도한다. NIH는 'Operation Warp Speed'를 통해 mRNA 백신의 신속한 개발과 대량 공급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팬데믹 대응 모델로 전 세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최근 NIH 예산 삭감이 현실화되며 미국 내 과학기술 생태계에 심각한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초기 연구자나 박사후 연구원(Postdoc)의 불안정한 고용 상황은 연구 지속성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로 인해 mRNA 기술 같은 첨단 플랫폼의 지속 가능성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연구 생태계의 안정성과 정책적 일관성이 없다면, 팬데믹 대응뿐 아니라 정밀의학·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등 미래 산업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정책적 교훈을 제공한다.
또한 미국은 팬데믹 이후 mRNA 기술을 보건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안보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관련 인프라를 민간 중심에서 공공 주도로 확장하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이는 백신 기술이 단지 의약품 개발을 넘어서, 국가의 전략적 자산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한국 또한 이를 참고하여 공공 주도의 지속 가능한 백신 전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책 방향: 전략 기술로서의 mRNA 백신
질병관리청이 추진하는 mRNA 백신 개발 사업은 단기 성과를 넘어 장기적 국가 전략기술 체계 구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특히 젊은 연구자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창의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고, 공공-민간-학계 협력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기술 자립을 위한 원천기술 확보와 글로벌 협력도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중소 바이오기업의 임상 진입과 상용화 과정을 정부가 밀착 지원함으로써 산업 전반의 역량을 고르게 끌어올리는 균형 정책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처럼 국산 mRNA 백신 개발은 단순한 한 차례 사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팬데믹 대응 능력 확보는 물론, 바이오주권 확립과 글로벌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의 전략적 투자와 정책 연속성이 필수적이다. 질병관리청장 지영미는 “국산 mRNA 백신 플랫폼을 통해 대한민국이 외부 공급망에 의존하지 않고, 감염병 유행 시 독자적인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인 시대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향후 정책은 단순한 백신 개발 지원을 넘어, 공공·민간·학계 간의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초기 연구자들이 안정적인 연구 환경 속에서 경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기술 자립을 위해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글로벌 수준의 기술이전 및 협력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보다 입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연구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mRNA 백신 기술은 단순한 감염병 대응 수단을 넘어, 암이나 희귀질환 등 정밀의학 분야로도 응용이 가능한 고부가가치 미래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이번 사업이 이러한 전략적 산업 기반을 공고히 다지는 출발점이 되도록, 민관 협력 강화와 함께 장기적 관점에서의 국제 전략 수립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