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가 2026년 중후반을 목표로 사상 최대급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공모액은 2백50억달러에서 3백억달러 이상, 상장 시 기업가치는 최대 1조5천억달러 수준으로 거론되면서 2019년 사우디 아람코에 이어 글로벌 자본시장의 또 다른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아직 공식 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머스크가 소셜미디어에서 “보도는 정확하다”는 취지로 화답하면서 시장의 기대와 경계가 동시에 커지는 모양새다.
2026년 중후반 상장 목표, 2027년 연기 가능성까지 열어둔 일정
해외 주요 매체 보도에 따르면 스페이스X 경영진과 자문사들은 2026년 6-7월을 전후해 뉴욕 증시에 기업공개를 단행하는 시나리오를 놓고 글로벌 투자은행들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다만 시장 상황, 기술 개발 진척, 규제 변수 등을 감안해 상장 시점을 2027년으로 미룰 가능성도 함께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알려진 그림은 비교적 분명하다. 스페이스X는 전체 지분의 5퍼센트 안팎을 시장에 내놓아 3백억달러 전후의 자금을 조달하고, 상장 시 기업가치를 약 1조5천억달러 수준으로 평가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공모 규모 기준으로는 2백90억달러를 모은 사우디 아람코 IPO를 소폭 상회하고,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아람코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1조달러를 넘어서는 상장 사례가 되는 셈이다.
다만 로이터 등 일부 통신은 공모액 기준을 “2백50억달러 이상, 기업가치는 1조달러 이상” 정도로 다소 보수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실제 규모는 공모 직전의 시장 상황과 투자 수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될 여지가 크다. 공모 구조와 발행 비율, 상장 시장(단독 상장인지, 스타링크 분할 상장과의 연계인지) 등 핵심 변수도 아직은 ‘워킹 초안’ 수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비상장 지분거래 시장 가치 2백억달러대에서 8백억달러대까지, 급등한 프리 IPO 밸류
스페이스X의 상장 논의 배경에는 지난 몇 년간 비상장 지분거래 시장에서 평가받은 기업가치의 가파른 상승이 있다. 2024년 중반까지만 해도 직원과 초기 투자자 대상의 이차 주식 매각에서 평가된 기업가치는 2천1백억달러 안팎에 머물렀다. 이후 연말 추가 거래에서 3천5백억달러 수준으로 올라섰고, 2024년 말-2025년에는 2백50-2백50억달러 후반, 나아가 3천5백억달러 수준까지 평가가 높아졌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또 다른 직원·투자자 대상 이차 거래에서 지분 일부를 주당 4백20달러 수준에 매각하는 방안이 논의되면서, 회사 가치가 8천억달러 이상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머스크가 공식적으로는 “지금 자금을 신규 조달하고 있지 않다”며 일부 보도를 부인했음에도, 시장은 스페이스X를 사실상 빅테크 상장사들에 버금가는 초대형 ‘프리 IPO’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IPO 구상은 그러한 비상장 지분거래 시장 밸류를 공모시장에서 한 번 더 ‘점프’시키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8천억달러대 사설 평가를 바탕으로 상장 시 1조-1조5천억달러까지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실패할 경우 과대평가 논란에 직면하겠지만, 성공 시에는 단숨에 애플·마이크로소프트·사우디 아람코에 이어 세계 자본시장을 대표하는 초대형 상장사 반열에 오르게 된다.
스타링크 고성장과 스타십 개발이 만든 ‘우주 테크 공룡’
스페이스X 기업가치의 핵심 동력은 단연 스타링크(Starlink) 위성 인터넷 사업이다. 머스크는 스타링크를 통해 지상 기지국 중심의 기존 통신 인프라를 보완하는 전 지구 위성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직접-모바일(direct-to-mobile)’ 서비스, 항공·해상용 서비스 등으로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이미 수백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며, 군통신·재난통신·원격지역 인터넷 접속 등 전략적 영역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시장 분석에 따르면 스페이스X 매출은 2025년 약 1백50억달러, 2026년 2백20-2백40억달러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스타링크 부문 비중이 빠르게 커지고 있어, 향후 위성 인터넷 사업이 사실상 ‘현금창출원(Cash Cow)’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국제우주정거장(ISS) 화물 및 유인 운송,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아르테미스(Artemis) 프로그램 등 다수의 국가 계약이 더해지면서 안정적인 매출 기반도 이미 상당 부분 구축한 상태다.
반면 차세대 초대형 로켓인 스타십(Starship)은 여전히 ‘미래 옵션’에 가깝다. 2025년 들어 시험 발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폭발 사고를 겪었지만, 궤도비행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장기적 기업가치에는 큰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스타십이 본격 상용화될 경우 달·화성 탐사와 더불어, 위성 발사 비용을 단위 중량당 기존 대비 한 자릿수 비율까지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밸류에 선반영되고 있다.
공모 자금의 쓰임새: 우주 데이터센터와 칩 확보 경쟁
보도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IPO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우주 기반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 연산 인프라 구축, 첨단 칩 확보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Blue Origin)이 우주 데이터센터 기술 개발에 나선 가운데, 스페이스X 역시 업그레이드된 스타링크 위성에 AI 연산 모듈을 탑재해 우주에서 직접 데이터 처리를 수행하는 구상을 투자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센터는 지상에서 막대한 전력과 냉각용 물을 소모하는 대표적 인프라다. 반면 우주는 태양광을 24시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기후 변화나 날씨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지상 데이터센터를 대체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 위성망과 재사용 로켓 기술을 결합해, 우주 데이터센터-지구 통신망-지상 데이터센터를 잇는 ‘3층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비치고 있다.
문제는 막대한 자본 소요다. AI 학습에 필요한 GPU와 고성능 칩, 우주 환경에서 작동 가능한 특수 하드웨어, 우주 시설 구축·발사 비용까지 감안하면, 수십억달러 단위의 추가 투자가 불가피하다. 결국 IPO는 단순한 엑시트(exit)가 아니라, 우주·AI 인프라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공격적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머스크 재산과 지배구조에 미칠 영향
이번 IPO가 현실화될 경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머스크 개인 재산의 급증이다. 현재 머스크는 테슬라, 스페이스X, xAI 등에서 확보한 지분을 바탕으로 4천6백억달러 안팎의 순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스페이스X 기업가치가 1조5천억달러 수준에서 상장되고, 머스크가 지분의 절반 안팎을 유지한다면 장부상 순자산은 이론상 1조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다만 공모 대금 자체는 회사로 유입되며, 머스크가 직접 현금을 손에 쥐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상장사는 보유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가 훨씬 용이하다는 점에서, 머스크는 테슬라 때와 마찬가지로 스페이스X 지분을 활용해 추가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다른 사업(예컨대 xAI, X 플랫폼 등)에 투입할 수 있다.
한편 상장은 스페이스X 지배구조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온다. 스페이스X는 현재 비상장사이기 때문에 머스크의 강한 오너십과 장기 비전이 비교적 큰 제약 없이 관철되는 구조다. 상장 이후에는 분기 실적과 현금흐름, 자본지출(Capex)을 둘러싼 투자자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스타십·우주 데이터센터·화성 이주 등 매우 장기적인 프로젝트들이 단기 수익성 논쟁에 휘말릴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다.
머스크 본인도 이런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과거 테슬라를 상장 상태에서 운영하면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수차례 충돌했고, 2018년에는 ‘상장폐지’ 카드까지 공개적으로 꺼내들었다가 결국 철회한 바 있다. 최근에는 기관투자자 자문사들을 두고 “기업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는 등, 주주자본주의 체제와의 긴장 관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스페이스X 상장은 머스크의 장기 비전과 공모시장 규율 사이의 균형을 시험하는 새로운 무대가 될 수 있다.
기존 투자자와 글로벌 자본시장에 주는 의미
스페이스X에는 이미 알파벳(구글 모회사), 피델리티 등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관투자자들이 깊게 관여해 있다. 이들 초기 투자자와 스톡옵션을 보유한 임직원에게 IPO는 수십억달러 단위의 유동성을 제공하는 ‘부분 엑시트’ 기회가 된다. 특히 비상장 지분거래 시장에서 이미 큰 폭의 장부가 평가이익을 누린 상태인 만큼, 공모시장에서도 비슷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가 주요 관심사다.
글로벌 자본시장 측면에서 보면 스페이스X IPO는 몇 가지 중요한 신호를 던진다. 첫째, 빅테크·우주·AI·인프라가 결합된 초대형 테마 기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어느 수준까지 존재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둘째, 미국이 우주·AI 인프라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삼고 민간 기업을 앞세우는 모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수 있다. 셋째, 비상장 지분거래 시장에서 장기간 성장해온 유니콘 기업들이 다시 공모시장으로 돌아오는 흐름이 본격화되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스페이스X가 미국 증시에 상장될 경우, 직접 투자뿐 아니라 관련 ETF·위성통신·우주항공 밸류체인 종목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 동시에 저궤도 위성통신, 우주 발사체, 우주 데이터센터 등에서 한국 기업이 어느 정도까지 참여할 수 있을지, 정부 정책과 산업 전략 차원에서의 고민도 커질 수밖에 없다.
남은 변수와 향후 관전 포인트
무엇보다 중요한 전제는 아직 스페이스X가 공식적으로 증권신고서(S-1)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거론되는 공모 규모와 기업가치는 모두 익명의 관계자 발언과 언론 추정을 바탕으로 한 ‘예상 시나리오’일 뿐이다. 실제 상장 시점과 공모 구조, 발행 비율, 듀얼클래스 지배구조 여부 등은 규제당국과 협의, 시장 수요 조사(북빌딩) 과정에서 상당 부분 조정될 수 있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스타십 시험발사의 성공 여부와 상용화 일정이다. 둘째, 스타링크의 가입자 증가 속도와 수익성, 그리고 각국 규제당국과의 주파수·안보 관련 마찰 수준이다. 셋째, 글로벌 금리와 증시 여건이다. 고금리·고변동성이 지속될 경우, 아무리 스토리가 좋은 성장주라 해도 1조달러 이상 밸류를 공모시장에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스페이스X IPO는 기술과 자본, 국가전략이 교차하는 초대형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머스크의 장기 비전과 공모시장의 냉정한 숫자가 어디에서 만날지, 향후 1-2년간 스페이스X가 보여줄 궤적이 글로벌 자본시장과 우주산업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