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6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해외입양 인권침해 사건의 증언과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 ‘로스트 버스데이(Lost Birthday)’ 시사회를 열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조작된 출생·의료 기록과 바뀐 성별 표기, ‘고아’로 분류돼 해외로 보내진 아이들의 실상을 통해 해외입양이 국가와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인권침해임을 환기한다. 이번 시사회는 진실규명을 넘어 실질적 피해 구제와 재발방지 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공론을 본격적으로 여는 출발점이 됐다. 이번 상영에 앞서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은 출생과 가족을 확인할 최소한의 권리가 박탈된 현실을 구조적 인권침해의 관점에서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좋은 가정에서 성장한 경험과는 별개로 조작된 기록과 신원 변경이 남긴 상처가 제도 실패의 결과임을 지적했다.
진실규명에서 ‘구제’로 아젠다 전환
다큐멘터리는 미국, 덴마크, 프랑스 등지의 해외입양 당사자들이 겪은 정체성 혼란과 실존적 고통을 증언으로 제시하면서, 진실화해위 조사보고서가 확인한 입양서류 조작과 기관 중심의 공급 구조를 화면으로 구체화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는 개인적 불운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빚은 구조적 인권침해였다는 점이 명확해졌고, 작품 공개는 과거 사실 확인을 넘어 제도개선과 피해 회복을 향한 정책 논의를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추가로 박선영 위원장은 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과 권고가 국가의 공식 사과, 기록 접근권 보장, 가족상봉 지원, 정보제공 시스템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환기하며, 민간 중심의 입양 구조를 공적 책임 체계로 전환하는 논의가 진행 중임을 짚었다. 이러한 발언은 작품이 던진 문제의식과 맞물려, 사실 확인에서 멈추지 않고 구제와 재발방지로 정책 의제를 확장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피해자 구제 방안의 한계: 권리 보장의 실효성을 높여야
현재의 피해 구제는 상징적 사과와 기념에 치우쳐 있으며, 신원 확인과 가족 찾기, 허위 기록의 정정에 필요한 실무적 지원이 충분하지 않다. 특히 해외입양 당사자들은 국가 비용으로 DNA 검사를 받을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국내외 매칭 시스템을 연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친생부모 찾기를 위해 공공기관이 중심이 되어 국내외 입양기관 자료와 공공기록물을 교차 검증하고, 입양기관·의료기관·행정기관에 보관된 기록에 대한 열람과 정정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집행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요컨대 구제의 실질성은 기록과 DNA 등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국제 공조의 수준에 의해 좌우되지만, 현 체계는 분절적이고 예산·전담 인력·해외 협력 창구가 부족하다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성과와 과제
2기 진실화해위에서 신청자 367명 가운데 56명만 진실규명이 이뤄졌고, 나머지 311명의 해외입양인은 차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의 규명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현행 ‘신청주의’에 의존하는 구조는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국내 절차와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해외입양인, 트라우마로 인해 접수를 회피하는 당사자, 고령·저소득 등 취약계층에게 구조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신청기간과 형식 요건, 입증 책임이 개인에게 과도하게 전가되면서 표본 편향과 ‘보이는 피해자만 구제되는’ 선택 편의가 발생하고, 국가의 진실규명 책무가 개인의 행정처리 역량에 종속되는 문제가 나타난다. 또한 사건의 시점이 오래되어 공공·의료·입양기관의 원본 문서가 분실·훼손되거나 보존기간 만료로 폐기된 사례가 적지 않고,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상의 열람 제한과 ‘제3자 제공 금지’ 원칙이 신원 확인과 친생가족 탐색을 구조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해외 기관이 보유한 기록과의 교차 확인 역시 국내법상 근거 미비로 지연되거나 좌절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생가족 탐색 목적의 제한적 열람·제공을 명문으로 허용하는 특별법(또는 관련 법 개정)과 비식별·가명처리 조건부 교차검증 절차, 입양 관련 기록의 영구보존 또는 보존기간 연장, 법원의 신속 특별열람·보존명령 도입, 해외 기관과의 자료이전·공동관리 근거 마련 등 법적·제도적 보완이 선행돼야 한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직권조사 범위를 확대하고, 주제·사건군 단위의 포괄 조사, 해외 공관과 지자체를 통한 능동적 통지와 대리 신청, 증거수집의 공적 책임 강화 등 보완 장치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향후 과제로는 사건 선정 기준과 불인정 사유를 공개해 선별·심의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내외 기록물과 입양기관 자료를 확보할 법정 권한을 보강해 증거 접근성을 제고하는 일이 시급하다. 아울러 조사 결정이 곧바로 구제 절차로 연동되도록 표준 운영지침(SOP)을 마련해, 조사-구제-재발방지가 선순환하는 연결형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제도개선의 흐름과 남은 공백
최근 공적입양체계로의 전환과 국제협약 비준 등 제도개선이 추진되어 왔지만, 과거 피해에 대한 실질적 구제는 여전히 미흡하다. 해외 여러 나라에서 조사와 입양 중단, 수사 또는 소송 제기가 진행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만큼, 한국도 국제 연대와 정보교환을 제도화하여 보완 장치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
정책적 제언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관계와 제도적 공백(신청주의의 한계, 기록의 분실·훼손 및 열람 제한, 국제 공조 미비 등)을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은 개선을 우선 검토·추진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국가는 전 국민과 해외입양인을 망라하는 통합 DNA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되, 당사자가 원할 경우에 한해 선택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개인정보 보호 원칙(목적 제한)을 엄격히 전제하며, 범정부 기관이 참여하는 채취·검사·매칭 절차의 표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상담·법률·통번역·기록 열람·DNA 절차를 통합 제공하는 전담 지원센터 설치를 검토하고, 장기 사례관리와 심리·정서 지원을 병행하는 방안을 함께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입양기관·의료기관·행정기관의 기록 보존과 공개 의무를 법률로 더욱 명확히 하되, 허위나 조작이 의심되는 기록에 대해서는 신속한 행정정정과 사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별도 절차 마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주요 송·수입국의 공공기관과 입양기관 간 정보교환을 제도화하기 위해 양해각서(MOU)를 활용하고, 해외 보관 기록에 접근할 수 있는 공적 열람 채널 확보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넷째, 위법 또는 부당한 절차로 인한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보상 기준을 정교화하고 피해자에게 과도하게 전가된 입증 부담을 완화하는 장치를 검토하는 동시에, 입양기관의 준법감시와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위반 시 행정처분·과징금·형사고발 연계를 정비하며 공적입양체계의 상시 평가와 대국민 보고의 제도화를 추진하되,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친생가족 탐색 목적의 제한적 열람을 허용하는 특별법과 개인정보보호법·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의료법 등 관련 법률의 정비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실 이후의 과제는 ‘회복과 보장’
해외입양 문제는 단순한 아동복지의 영역을 넘어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구조적 인권 문제다. 진실규명은 출발점일 뿐이며, 피해자에 대한 신원 확인과 가족 연결, 기록 정정과 배상 등 실질적 회복과 접근권, 알 권리, 자기결정권 보장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2기 위원회가 남긴 공과를 토대로, 차기 진실화해위원회와 정부는 조사-구제-재발방지로 이어지는 통합 설계를 서둘러 완성해야 한다. 특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남은 미규명 신청 사건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조사 권한과 예산, 전담 인력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위원회의 활동 기간과 범위를 해외입양 특별조사 및 구제 연계 기능까지 확장하고, 외교당국과 수입국 정부, 해외 입양기관과의 협력 채널을 상시화해야 한다. 차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에서 구제로, 그리고 재발방지로 이어지는 통합 설계를 제도적으로 완성함으로써 피해자 회복이라는 국가적 책무를 실질적으로 이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