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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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원이 ‘지니어스 법안’, ‘클래리티 법안’, ‘Anti-CBDC 감시 국가 법안’ 등 가상화폐 3대 법안을 통과시키며 디지털 금융 규범 정립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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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게 100% 지급준비금 보유, 자산 분리 보관, 보고 의무 등을 부과하며 이미 상원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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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리티 법안은 디지털 자산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SEC-CFTC 간 감독 권한을 분리해 규제 효율성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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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CBDC 법안은 연준의 디지털 달러 직접 발행을 제한해 프라이버시 침해를 막고, CBDC 도입 권한을 의회에 귀속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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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민간 결제 인프라가 이미 잘 갖춰져 있으나,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통화 주권 강화 및 국제 결제 경쟁력 확보를 모색 중이다.
현지시각 17일, 미국 하원은 가상화폐 산업을 제도권에 편입시키기 위한 세 가지 핵심 법안을 통과시켰다. 각각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 '디지털 자산 시장 구조 명확화 법안(CLARITY Act)', '반 CBDC 감시 국가 법안(Anti-CBDC Surveillance State Act)'으로 명명된 이들 법안은 가상자산의 규제 공백을 메우고 금융시장 안정성을 도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신뢰성 강화: '지니어스 법안'
지니어스 법안은 결제용 스테이블코인(payment stablecoin)의 발행과 운영에 대한 최초의 연방 차원 규제를 마련한다. 발행 주체는 은행 자회사, 연방 또는 주정부 인가 기관으로 한정되며, 무단 발행은 금지된다. 지급준비금 100% 보유, 고객자산과 담보자산의 분리 보관, 월별 보고 의무 등 엄격한 투명성 기준이 적용된다. 또한 파산 시 스테이블코인 보유자가 지급준비금에 대해 최우선 변제 권리를 갖도록 규정,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이용자 보호를 최우선에 둔다. 본격 시행은 2026년 11월로 예정되어 있으며, 그 전까지 세부 시행령이 마련된다. 지니어스 법안은 하원 통과 이전에 이미 상원 표결을 마쳤으며, 현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서명만을 남겨둔 상태다. 사실상 입법 절차의 마지막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SEC-CFTC 권한 분리: '클래리티 법안'
디지털 자산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기 위한 클래리티 법안은 SEC와 CFTC의 감독 권한을 구분한다. 블록체인 기반 자산을 '디지털 상품'으로 정의하고, 이를 증권과 구분하여 CFTC가 관할토록 했다. 반면, 증권형 디지털 자산은 기존과 같이 SEC의 감독 하에 놓인다.
이중 등록 체계를 도입해 중복 규제를 방지하고, 기술 성숙도에 따라 규제를 완화하는 인증제도도 함께 도입된다. 셀프 커스터디 권리 보장, 고객 자산 분리 보관 의무화, 거래소·중개인·딜러 등록제 도입 등을 통해 시장의 예측 가능성과 투자자 보호를 동시에 확보하고자 했다.
클래리티 법안은 하원 표결을 통과했으나, 상원 심의 및 표결을 아직 거치지 않은 상태로 입법 절차의 중반부에 위치해 있다.
디지털 프라이버시 보호: '반 CBDC 감시 국가 법안'
연방준비제도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제한하는 반 CBDC 법안은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Fed는 개인을 상대로 직접 디지털 달러를 발행하거나 계좌를 운영할 수 없으며, 민간기관을 통한 우회적 배포도 금지된다. CBDC 도입 여부는 의회가 결정하며,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추진할 수 없도록 법적 제어장치를 마련했다.
이 법안 또한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 내 본격 심의는 아직 진행 중이며 향후 수정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적 공방과 절충의 산물 및 시장 반응
이들 법안은 당초 7월 15일 표결에서 공화당 일부 강경파의 반대로 부결됐으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반대 의원들을 직접 설득하며 극적으로 가결됐다. 민주당은 소비자 보호 조항을, 공화당은 기술 혁신 촉진과 정부 권한 남용 방지를 강조하는 방향에서 조율이 이뤄졌다.
법안 통과 직후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시장은 제도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특히 제도권 금융기관의 본격적인 시장 진입과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서비스 확산, SEC와 CFTC 간 역할 정립에 따른 규제 예측 가능성 제고 등으로 전반적인 시장 안정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두 법안(CLARITY Act, Anti-CBDC Act)은 아직 상원 통과 절차를 남겨두고 있으며, 규제기관의 세부 시행령 마련과 민간의 기술·운영상 준비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이해관계, 업계의 규제 수용성, 국제 금융환경의 변화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하며 시장 불확실성이 일시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 디지털 금융 규범으로의 전환점
이번 하원의 가상화폐 3법 통과는 미국이 글로벌 디지털 금융 규범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로 평가된다. 특히 지니어스 법안은 상원을 이미 통과하고 대통령 서명만을 남겨둔 상태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연방 차원의 포괄적 규제를 입법화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지니어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사실상 '현금 등가물'로 간주하고, 발행자에게 100% 지급준비금 보유를 의무화하며 그 자산 구성 요건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지급준비금은 즉시 사용 가능한 현금성 미국 달러, 만기 93일 이하의 단기 국채, 그리고 현금·예금·단기국채 등 고품질 유동자산(HQLA)으로만 제한되며, 위험 자산은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조치는 스테이블코인의 본질적 안정성과 유통 신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미국 정부의 정책적 의지를 반영한다.
스테이블코인, 디지털 자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라는 3대 축을 제도권에 편입시키는 이 입법은 기술 혁신과 금융 안정, 소비자 보호라는 복합적 목표를 균형 있게 반영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입법 사례는 다른 국가들의 디지털 자산 규제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며, 글로벌 가상자산 규제의 표준 형성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한국에서의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와 정책적 고려
미국의 입법이 디지털 금융 규범의 글로벌 기준 형성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가운데, 한국 또한 이에 대한 제도적 대응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이미 카카오페이, 제로페이, 네이버페이 등 다양한 전자결제 수단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고, 대부분의 상점에서 신용카드 및 체크카드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결제 인프라 측면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도입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특히 민간 결제 인프라가 이미 고도화되어 있고, 실시간 정산이 가능한 금융 시스템이 자리잡은 환경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일상 생활에서 필수적이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욱이 기존 전자금융서비스는 은행 계좌 연동, 소비자 보호 체계, 법적 기반 등이 정비되어 있어 신뢰성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오히려 기존 시스템과의 중복을 초래할 수 있으며, 실제 사용처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스테이블코인을 통화 정책 수단 또는 국제 거래 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은행이 주도적으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해외 기업 및 기관과의 거래에서 수수료를 절감하고 결제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으며, 나아가 원화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는 '준기축통화화' 전략의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 여지는 충분하다.
특히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원화의 사용성을 확대하고, 국제거래 시 신속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써 의미가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더 나아가, 향후 한국이 아세안이나 중동, 중남미 등 비달러권 국가들과의 블록체인 기반 결제 인프라를 공동 구축할 경우,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전략적 기축 디지털 자산으로서의 기능을 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한국의 통화 주권과 디지털 경제 외교력 강화를 위한 핵심 도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