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전 세계 수십 개국이 노동자의 권리를 기념하는 날로 채택한 이 날은 한국에서 '근로자의 날'과 '노동절'이라는 두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역사적 의미와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명칭 하나를 둘러싼 이 분절의 역사에는 국가 주도 경제 개발과 노동자 주체의 권리 투쟁이라는 두 개의 서사가 얽혀 있다.
국제 노동절의 유산과 한국의 출발점
5월 1일은 1886년 미국 시카고에서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한 시위 중 발생한 '헤이마켓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이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이어지며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후 이를 계기로 세계 노동운동은 단결과 저항의 상징으로 5월 1일을 채택하게 되었다.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은 이 날을 '국제 노동절(May Day)'로 지정하면서 세계 노동운동의 상징일이 되었다. 노동절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노동시간 단축, 임금 개선, 노동 3권 확보 등 핵심적 노동권 요구를 상징하며, 정치적 집회와 시위를 통해 현실적 변화를 이끌어온 계기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해방 직후인 1946년 전국적으로 20만 명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노동절 집회가 열렸으나, 이후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금지되었다.
'근로자의 날'의 등장과 국제적 재해석
1963년 박정희 정부는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통해 한국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을 공식 기념일로 지정하였다. 이는 사회주의적 뉘앙스를 지닌 "노동"이라는 용어 대신 "근로"를 채택하며, 반공 이데올로기와 경제 개발 중심 정책에 부합하는 선택이었다. 1994년이 되어서야 5월 1일로 날짜를 변경했지만, 명칭은 여전히 "근로자의 날"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명칭 변경은 단순한 용어 차원을 넘어, 당시 정부가 '노동'이라는 말에 내포된 계급성과 투쟁성을 배제하고자 한 의도를 드러낸다. '노동'은 집단적 권리와 투쟁을 상징하지만, '근로'는 국가 발전을 위한 개인의 성실함을 강조하는 용어로 해석된다. 1970년대 유신체제는 "근로자는 공장의 왕"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생산성 중심의 통제적 노동 정책을 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1989년 노동절 100주년에는 노동계가 자율 기념행사를 조직하며 정부 주도 서사에 저항했고, 이것이 5월 1일 환원의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 주도의 재해석은 국제적 흐름과는 다소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 주요 선진국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5월 1일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최대 3일간의 연휴를 제공한다. 미국은 예외적으로 9월 첫째 월요일을 'Labor Day'로 기념하지만, 명칭과 제도의 일관성은 유지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국제노동절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과 국경일에서 배제된 법적 위상 등에서 독특한 이중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노동절을 단지 상징적 기념일로 흡수하는 동시에, 정치적 함의를 중화시키려는 재해석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현실 속 불일치: 법적 지위와 사회적 실천
현재 5월 1일은 법적으로는 유급휴일이지만, 국경일은 아니다. 또한, 공무원은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의 적용 대상이 아니며, 공무원법에 따라 이 날에도 정상 근무한다. 공공기관은 정상 근무하며, 5인 미만 사업장은 휴무 대상에서 제외된다. 2023년 기준, 5인 이상 사업장의 78%가 이 날을 휴무했으나, 소규모 사업장의 참여율은 여전히 낮다.
이 외에도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다양한 노동자 집단이 존재한다. 특히 쿠팡, 배달의민족, 쏘카, 타다 등 플랫폼 기반 사업장에서 일하는 배송기사, 배달노동자, 라이더, 퀵서비스 종사자 등 특수고용직(특고)과 프리랜서 형태의 종사자들은 실질적으로 종속된 고용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아 근로기준법상의 유급휴일 보장이나 수당 지급 대상에서 소외되고 있다. 이들 다수는 5월 1일에도 평일처럼 업무를 수행하며, 휴일 수당이나 보상 없이 일하고 있음에도 관련 분쟁은 고용 구조상 해결이 쉽지 않다. 노동을 제공하지만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존재는 근로자의 날의 상징성과 실질적 효용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 인식의 변화와 통합의 과제로서의 5월 1일
노동절과 근로자의 날을 둘러싼 인식 차이는 세대와 정치 성향에 따라 갈린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30대는 '근로자의 날'에 상대적으로 익숙하고, 50대 이상과 노동조합원은 '노동절' 명칭 복원을 지지한다. 이러한 인식의 간극은 교육 부족과 사회 담론의 왜곡에서 비롯되었다는 평가다.
이는 단순히 명칭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이 사회 제도에 반영되는 방식까지 아우르는 문제다. 특히 한국 사회가 노동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제도적 논의의 지체다. 현재 국회에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휴무를 적용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으나 논의는 정체되어 있다. 명칭 변경 및 국경일 승격 논의 역시 보수 진영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다.
이제는 5월 1일을 분절된 기념일이 아니라, 노동의 역사성과 보편성을 포용하는 통합적 기념일로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그것은 곧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와도 직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통합의 요구는 단지 기념일의 형식이나 명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실질적인 보호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제도적으로 누구를 '노동자'로 규정할 것인가라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이런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가 현재 마주한 본질적인 질문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바로 '누가 노동자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누가 노동자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로 나아가기
근로자의 날을 둘러싼 명칭 논란은 단순한 기념일 표기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누가 노동자인가'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와도 맞닿아 있다. 이는 노동을 구성하는 실질적 관계와 법적 지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슈다.
2006년 대법원은 대학입시학원 강사 사건(2004다29736) 판결에서 처음으로 실질 중심의 종속성 판단 기준을 확립했고, 이후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다양한 직종에 대해 근로자성을 폭넓게 인정해 왔다. 예컨대 2023년 9월 21일에는 의원에서 위탁진료계약을 체결한 의사에 대해서도 '정해진 시간 동안 진료하고 고정적인 대가를 받는다'는 이유로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또 정수기 수리기사, 유아체육강사, 웨딩플래너, 장애인도우미, 학습지 교사 등 다양한 직군에 대해 계약 형식이 아닌 사용자의 지휘·감독 여부, 경제적 종속성 등을 기준으로 실질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프리랜서, 위탁계약자, 플랫폼 종사자 등 전통적 고용관계에 속하지 않는 이들도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노무를 제공하고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면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해석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근로기준법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 점점 더 다양한 노동형태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5월 1일의 의미를 되새기는 오늘, '근로자'라는 법적 지위를 둘러싼 판단 기준 또한 더 투명하고 공정하게 정비되어야 할 시점이다. 누가 이 나라의 노동자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기념일의 이름보다 중요한 노동 존중의 실천도 공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