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는 이틀 연속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주도하는 ‘출근길 선전전’이 펼쳐졌다.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에 장애인 권익 보장을 촉구하며, 특히 최중증 장애인 노동자 400명이 권리중심 일자리 사업에서 해고된 것에 대한 항의로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번 시위는 819일째로 이어지는 상징적 활동으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방식의 권리투쟁으로 평가된다.
22일 오전 8시부터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작된 침묵시위는 피켓을 들고 말없이 역사 내에 정렬해 서 있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장연 측은 열차 운행을 방해하거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비폭력적 표현 행위라고 주장했으나, 서울교통공사 측은 이를 철도안전법 위반으로 간주하고 즉각적인 퇴거 요청을 통보했다. 공사는 특히 철도안전법 제48조, 제49조 및 제50조 조항을 근거로 열차 안전과 승객 이동의 자유를 방해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퇴거 절차를 진행했다.
전장연이 이에 불응하자 서울교통공사는 오전 8시 16분경 지하철보안관과 관계 직원들을 투입하여 물리적으로 활동가들을 역사 외부로 이동시켰다. 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고 충돌이 발생했으며, 오전 8시 28분에는 전장연 소속 활동가 6명과 시민 7명이 퇴거 조치되어 인근 서울대병원 입구로 이동해 선전전을 이어갔다.
이형숙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강제 퇴거 과정에서 어깨를 다치고 휠체어가 손상되었다고 주장하며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민형사상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서울시는 이번 행동을 ‘불법시위’로 규정하며, 관할 경찰서에 형사고발 조치를 취했고, 공공업무방해와 시설이용 손해에 대해 민사 소송도 병행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시위 성격과 당국 해석의 충돌
서울교통공사 측은 전장연의 시위가 철도안전법 제48조에서 금지하는 "공중이 이용하는 철도시설 또는 철도차량에서의 소란행위" 및 "열차 운행 중 승하차 방해 또는 출입문 개폐 방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철도운영 질서와 대중교통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장연 측의 설명과 한겨레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시위는 어떠한 물리적 방해나 확성기 사용도 없이 침묵으로 진행되었으며, 승강장 내에서 말없이 서 있는 평화적 시위 방식이었다. 이는 전날 강경 대응을 천명한 서울시의 방침 이후에도 물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절충적 표현 방식이었다고 해석된다.
법적 쟁점 분석
1. 철도안전법 제48조 적용의 모호성
서울교통공사가 퇴거 조치의 법적 근거로 제시한 철도안전법 제48조는 도시철도시설의 보호를 명시하고 있으며, 철도시설 내에서 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안전을 해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은 구체적인 행위 유형에 대한 명시가 부족하며, 하위 시행령 또한 침묵 상태로 존재하는 시위와 같은 특수한 형태의 표현 행위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법적 공백 속에서 침묵시위가 과연 "공중이 이용하는 철도시설 또는 철도차량에서의 소란행위" 및 "열차 운행 중 승하차 방해 또는 출입문 개폐 방해 행위"에 포함되는지는 법률 해석과 판례 분석을 통해 엄밀히 판단되어야 한다. 침묵시위는 고성방가나 출입문을 물리적으로 막는 행위와는 본질적으로 구분되며, 이에 대한 규정 적용은 법 해석의 확장으로 인해 기본권 침해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2. 철도종사자 지시 준수 의무와 정당성 문제 (제49조)
철도안전법 제49조는 철도종사자의 직무상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의무를 이용자에게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이 의미하는 지시의 정당성과 적법성 요건은 자명하지 않다. 공익 실현이라는 명분 하에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 해당 지시는 비례성, 필요성, 침해 최소성의 원칙을 충족해야 하며, 단순한 행정 편의나 정치적 압력에 의한 결정은 헌법적 정당성을 상실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퇴거 조치를 정당화한 지시가 실제로 철도 안전과 질서 유지에 필수적이었는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과잉 조치였는지는 향후 법적 심사를 통해 판단되어야 할 핵심 쟁점이다.
3. 집시법과 지하철 역사 내 시위의 관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옥외 집회를 사전 신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실내 공간인 지하철 역사 내부에서의 시위는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전장연의 침묵시위는 집시법상 신고 의무를 지니지 않으며, 무신고 시위로 간주되어 해산 근거로 활용될 수 없다.
이 점에서 지하철 역사 내에서 이뤄진 비폭력 침묵시위를 법적으로 제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법률상의 명확한 근거와 함께 실제 공공 안전에 대한 위험 발생 여부가 입증되어야 한다.
4. 대법원 판례의 기준과 이번 사건의 비교
대법원은 과거 판례를 통해, 공공장소 내 집회가 강제 해산될 수 있는 요건으로 '폭행, 협박, 기물 파손, 방화 등 질서 문란 행위'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의 존재를 요구하고 있다(대법원 2003도2824 판결 등 참조).
혜화역 침묵시위는 이러한 위험을 초래했다고 보기 어려운 사례로, 대중교통의 질서에 실질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았으며, 물리적 접촉이나 긴급 대피 방해 행위도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법원의 엄격한 해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 공사가 퇴거 조치를 단행한 것은 정당성 논란의 여지가 있다.
5. 헌법 제21조의 적용과 표현의 자유
헌법 제21조는 국민의 집회·결사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이 권리는 단지 발언이나 시위의 형식에 국한되지 않고 침묵, 상징적 행동 등 다양한 비폭력적 수단을 포괄한다. 침묵시위는 사회적 소수자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자,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참여를 보장하는 중요한 형태이다.
과잉금지원칙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그 목적이 정당해야 하고, 수단은 필요하고 침해는 최소화되어야 하며, 이익 형량에서 제한의 필요성이 보호 가치보다 높아야 한다. 침묵시위에 대해 강제적 퇴거 조치를 취한 것은 이러한 헌법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될 수 있으며, 위헌 판단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결론
혜화역 전장연 침묵시위에 대한 서울교통공사의 퇴거 조치는 단순한 철도안전법 조항 적용 문제를 넘어, 표현의 자유 및 집회의 자유라는 핵심적 기본권에 대한 제한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현행 법령과 대법원 판례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침묵시위가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야기했는지는 의문이며, 사전신고 요건 역시 적용되지 않아 공사의 조치가 과잉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향후 이 사안은 행정소송 또는 헌법소원 등의 절차를 통해 그 위법성 또는 위헌성이 법적으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크며, 결과에 따라 향후 공공장소 내 침묵시위나 표현행위의 법적 기준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판례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사회적 약자의 권리 주장과 국가 또는 지방정부의 공공질서 유지 간의 긴장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향후 공공공간에서의 표현 자유의 한계를 둘러싼 법적·사회적 논의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