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을사늑약에서 한일기본조약까지

한일 관계의 굴곡진 역사

한국에서 '을사년'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이 겪은 깊은 상처와 아픔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1905년과 1965년,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결정지은 두 개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하나는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이며, 다른 하나는 국교를 정상화한 한일기본조약이다. 두 조약은 각각 식민지배와 국교정상화라는 명목 아래 체결되었지만, 한국 사회에 깊은 상처와 논란을 남겼다.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은 일본의 강압 속에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을사늑약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며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을 맺어 국제적 지지를 얻었다.

고종 황제는 끝까지 조약 체결을 거부했으나,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를 통해 을사늑약을 강행했다. 이완용(내무대신), 박제순(외부대신), 이지용(의정부 참찬), 권중현(농상공부대신), 이근택(군부대신) 등 소위 '을사오적' 등 소위 '을사오적'은 일본의 압박에 굴복하며 조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으로 인해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상실하고, 통감부가 설치되어 일본의 직접 통치를 받기 시작했다.

을사늑약 이후, 고종은 헤이그 특사를 파견해 국제사회에 호소했으나, 결국 1910년 한일병합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한민족은 일제의 식민 지배 아래 고통받는 세월을 맞이하게 된다.

 

 

해방 이후 20년이 지난 1965년,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한국 경제가 여전히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반공 진영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한일 수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고려하면서도 한국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통해 국제적 입지를 다지려 했다.

6월 22일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은 두 나라 간의 국교 정상화를 공식화한 협정이었다. 그러나 이 조약은 경제적 지원을 대가로 식민 지배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조약 체결 당시 일본은 한국에 3억 달러의 무상 지원과 2억 달러의 유상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 등 식민 지배의 책임을 회피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많은 이들의 반발을 샀다.

특히, 일본이 제공한 경제 지원금과 차관의 상당 부분이 일본 기업들의 한국 내 사업 투자와 대일 청구권 자금의 일본 기업 제품 구매로 연결되면서, 실질적으로 일본이 경제적 혜택을 되찾아갔다는 평가가 제기되었다. 조약 체결 이후 일본 기업들은 한국 경제 발전 과정에서 주요 공급업체로 자리 잡았으며, 이에 따라 일본 경제도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한국에서는 조약 반대 시위가 이어졌고, 박정희 정부는 이에 강경 대응하였다. 당시 학생들과 야당 인사들은 일본의 사과와 배상이 없는 상태에서의 국교 정상화에 반대했으며, 협정 체결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을사늑약과 한일기본조약은 시대와 맥락은 다르지만, 모두 한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을사늑약은 국권 상실의 시작점이었고, 한일기본조약은 경제 발전의 발판이 되었지만 과거사 청산에는 미흡했다.

오늘날에도 한일 간 역사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양국의 갈등은 다시 불거졌으며, 위안부 문제 역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한 특별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기존 한일 청구권 협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시민 단체들은 피해자 개개인의 배상과 사과를 요구하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기업들도 법원의 판결에 따라 자산 압류 등의 법적 조치를 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고 이를 단순히 덮어두려 한다면, 역사적 갈등은 지속되고 양국 간의 신뢰 구축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과거 청산 없이 진행되는 외교는 단기적인 경제 협력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갈등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다시 표면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 민간 교류, 시민단체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역사 교육을 통해 양국의 국민들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문화 및 학술 교류를 확대하여 상호 이해를 증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통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인권 회복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양국의 지도자들은 책임 있는 태도로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단순한 경제적 협력을 넘어 역사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평화와 협력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출처

박태균, 『한일 관계와 미국의 역할』, 2015

정구종, 『한일기본조약의 성립 과정과 한계』, 2010

한철호, 『을사늑약의 정치적 배경』,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