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회 유호준 의원이 2020년 12월 혹한 속 비닐하우스를 기숙사로 쓰다 숨진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고(故) 속헹 씨 사건과 관련해, 최근 2심 법원이 국가의 일부 배상 책임을 인정한 뒤에도 노동부가 상고를 결정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과 노동부 장관이 수차례 밝혀온 ‘이주노동자 차별 금지’ 원칙과 상고 방침이 어긋난다고 지적하며, 상고 취소와 함께 이주노동자 숙소 전반에 대한 합동 점검 및 권한 이양을 요구했다.
사건 개요
2020년 12월 20일, 포천 지역에 연일 한파가 이어지던 가운데 속헹 씨는 사망 이틀 전부터 난방이 가동되지 않은 불법 건축물(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머물다 숨졌다. 난방 스위치를 올려도 계속 떨어지자 동료들은 추위를 피해 친구들의 집으로 이동했지만 그는 숙소에 남았다. 부검 결과 직접 사인은 간경화 합병증으로 확인됐다. 일하다 생긴 병을 제때 치료받지 못했다. 한파 속 난방이 작동하지 않은 숙소 환경은 사망의 배경 요인으로 지목됐다. 그는 건강이 악화된 뒤에도 같은 숙소에서 생활했고, 2022년 5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이 인정됐다. 유족은 같은 해 9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심 판단과 노동부 상고 — 배상 책임 인정과 정책적 메시지 충돌
9월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3-2부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대한 정부의 지도·점검 소홀을 문제 삼아 국가의 배상책임을 일부 인정하고 유족에게 각 1,000만 원(총 2,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하자, 노동부는 이에 상고를 결정했다. 유 의원은 이 조치가 도정 시절과 대통령 취임 이후 일관되게 표명된 ‘이주노동자 권익 보호’ 기조, 그리고 노동부 장관이 최근 간담회에서 밝힌 “모든 노동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과 배치돼 정부가 대외적으로 내세운 ‘노동자 보호’ 메시지가 소송 전략과 충돌한다고 비판했다. 쟁점의 핵심은 숙소의 안전·위생·난방 등 기본 기준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국가가 어디까지 부담하느냐는 점이다.
고용허가제의 구조적 쟁점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채용이 어려운 사업장에 외국인 고용을 허가·배치하는 국가 주도 제도다.
노동부는 2021년 1월 1일부터 농축산어업 분야에서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등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사업장의 신규 고용허가를 원칙적으로 불허했고, 같은 해 7월 1일부터는 전 업종으로 확대했다. 다만 지방자치단체의 ‘임시숙소’ 축조신고필증이 있는 경우 예외를 인정한다.
이러한 숙소에 대하여 현장 지도·점검을 담당하는 지방노동관서 인력(각 고용센터 근무)은 약 180명으로, 이들이 연간 5천5백여 곳을 맡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 1인당 약 30~31곳을 담당하는 셈이다. 점검 외에도 고용허가 심사, 사전상담, 사업장 변경 처리, 교육·민원 응대 등 본연 업무를 병행해야 해 5천5백여 곳을 실질적으로 모두 점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건은 ‘고용허가’라는 전제 아래 현장의 주거환경(비닐하우스·컨테이너 등)에 대한 점검·개선 의무의 귀속 주체를 둘러싼 정책 논의를 촉발했다.
정책적 함의
정책적으로는 첫째, ‘모든 노동자 보호’라는 원칙과 소송 전략의 정합성을 맞춰 정부 메시지의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고용허가제의 ‘관리’ 개념에 숙식·주거 안전을 명시적으로 포함하도록 세부 규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셋째, 중앙과 지방의 협업 모델을 제도화해 상시 점검, 시정명령, 개선비용 지원, 미이행 시 제재 등 집행 수단을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
이번 상고 결정 논란은 단일 사건을 넘어, 고용허가제의 관리 책임과 국가의 인권·안전 책무 범위를 재정의하는 계기로 확장되고 있다. 정부가 소송 대응의 방향을 재검토하고, 지자체와 함께 숙소 안전 실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 기반을 마련할 때, 이주노동자 보호라는 국정 철학과 현장의 집행이 비로소 일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