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첩사가 민간인 신분의 최강욱 전 의원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 군 법무관 30여명의 이름과 기수, 직책을 나열한 내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군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과 인사 전횡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통상적인 보안 업무의 범주를 넘어 특정 인맥을 분류하고 관리한 정황이 문서 형태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과거 보안사·기무사 시절의 불법 사찰과 ‘정치 공작’의 관성이 조직 이름만 바꾼 채 재현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문건이 보여준 ‘분류와 관리’의 흔적
JTBC가 공개한 ‘법무병과 참고 보고’ 문건은 2023년 방첩사 신원보안실이 작성한 것으로 소개됐다. 문건에는 당시 민간인 신분이던 최강욱 전 의원의 군 복무 시기 동향과 전역 이후 행적이 적시돼 있고,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최 전 의원과 ‘모임’을 했다는 군 관계자 30여명의 이름이 손글씨로 정리돼 있다.

문건이 문제 되는 지점은 ‘접촉’의 사실을 뒷받침할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작성자, 작성일자, 결재 라인 등 문서 관리의 기본 요소도 남지 않았고, 명단에 포함된 인물들 가운데는 최 전 의원과 모임을 가진 적이 없거나 일면식조차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 사법 조직 육사 중심 장악 시도 의혹
이번 사안은 단순한 ‘정보 수집’의 일탈을 넘어, 군 사법 조직 내부의 인사 경쟁과 결합했을 가능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문건이 특정 인물을 ‘라인’으로 묶어 인맥 지도를 그리는 방식으로 작성됐다면, 그 자체가 향후 보직·진급 등 인사 판단에 활용될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추미애 의원은 이 문건이 진위가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인사에 개입해왔다는 증거라고 주장했고, 최 전 의원은 이를 명백한 민간인 사찰로 규정했다. 최 전 의원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명단 속 인물들을 대부분 알지 못하며, 아는 사람도 4-5명 정도에 불과한데 그마저도 자신이 주장해 온 군사법원 폐지와 같은 쟁점에서 반대편에 섰던 인물들이 포함돼 있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최 전 의원은 매불쇼에서도 문건 내용이 완전히 날조됐다고 직격하며, 자신이 예비역 소령인 점을 감안하면 문건에 ‘연계’된 것으로 적시된 인물들 가운데 준장급 장군과 대령, 중령 등이 포함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문건이 특정 인물을 명분으로 삼아 육사출신들이 군 사법 체계를 장악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며, 육사 출신 중심의 기득권이 비육사 출신 법무관을 퇴출하기 위해 ‘리스트’를 만든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내놓았다. ‘누가, 어떤 목적을 위해, 어디까지’ 문건을 확장해 나갔는지 규명되지 않는다면, 군 내부에서 특정 성향을 낙인찍어 배제하는 실무가 관행화됐을 우려를 지우기 어렵다.
이름 바꿔도 통제 불능의 구조
군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 논란은 권한 집중과 불투명한 보고 체계에서 반복된다. 방첩-수사-신원조사가 뒤섞이면서 정보가 ‘위험 평가’가 아니라 ‘인사와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소지가 커졌다. 문재인 정부가 기무사 해체 후 안보지원사로 바꿨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방첩사로 재편되며 구태가 되살아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 직보·독대 관행은 검증 장치를 약화시키고 ‘코드형 정보’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본래 쿠데타를 막는 안전장치였다는 평가와 달리, 현실에선 정권과 정치에 얽혀 ‘쿠데타에 끼어드는 조직’으로 비친다는 냉소도 있다. 보안사 민간인 사찰, 기무사 세월호 유가족 사찰과 계엄 문건 논란은 그 연장선으로 거론된다.
국방부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는 2026년 1월 방첩사 해체와 기능 분산을 권고했다. 다만 간판 교체와 일부 인적 정리만으로는 재발을 막기 어렵다. 정보 수집-문건 관리-인사 활용을 분리하고, 외부 감시와 책임을 제도화하지 않으면 문제의 핵심은 남는다.
재발 방지를 위한 통제 장치 설계
이번 문건의 작성 지시 라인과 활용 경로, 그리고 ‘인사에 미친 영향’이 있었는지 여부는 수사로 규명돼야 한다. 동시에 국회와 정부는 군 정보기관이 본연의 방첩 임무에만 집중하도록 권한을 재설계하고, 정치적 성향 분류나 인맥 관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법적 금지와 감사 체계를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
군은 민주적 통제의 대상이며, 정보기관의 권한은 항상 최소화와 투명성 원칙 아래 놓여야 한다. 이번 사안이 ‘또 하나의 과거사’로 정리될지, 아니면 군 정보기관의 구조적 병폐를 끊는 제도 개혁으로 이어질지는, 수사 결과와 후속 입법의 완성도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