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분석] ILO 기본협약과 한국 노조법 2조·3조 문제의 관계

국제 기준과 노동기본권의 핵심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 규범으로, 특히 제87호(결사의 자유)와 제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가 핵심 조항으로 꼽힌다. 이러한 협약은 단순한 선언적 의미를 넘어 각국이 노동 관련 법·제도를 국제 기준에 맞춰 조정하도록 요구하는 실질적 역할을 수행한다. 제87호 협약은 모든 노동자가 차별 없이 자유롭게 노조를 설립·가입할 수 있도록 보장하며, 국가나 사용자 측이 노조의 규약·운영에 개입할 수 없도록 명시한다. 이 과정에서 노조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강조된다.

 

또한 제98호 협약은 노동자가 조직을 통해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는 단체교섭의 형식적 절차만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교섭 과정에서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노조를 무력화하거나 부당한 불이익을 가하는 행위를 철저히 금지하도록 규정한다. 특히 부당노동행위나 노조 활동에 대한 불이익 처우를 엄격히 금지함으로써,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자유롭고 안전하게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

결과적으로 ILO 기본협약은 노조 활동이 자유롭고 자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이를 노동권 보장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협약은 단체교섭권과 쟁의권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환경 조성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한국 노조법 2조·3조의 한계

 

한국의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3조는 ILO의 기준에 비해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조법 2조(정의)는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을 명시하며, 노동조합, 근로자, 사용자, 단체교섭, 쟁의행위 등의 핵심 개념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근로자’에 대해서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정의하여, 전통적인 종속적 근로관계에 속하는 노동자 중심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이러한 정의는 근로자 개념이 엄격히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결과를 초래하며, 다양한 고용형태의 종사자—예를 들어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는 법적으로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아 노조를 설립하거나 가입하는 데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 개념 역시 “사업주, 사업경영 담당자, 기타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한정되어 있어, 원청 기업이나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3자가 사용자로 법적 책임을 지는 사례가 드물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러한 제한적 사용자 정의는 하청·간접고용 구조에서 발생하는 불공정한 상황을 노조가 교섭력으로 대응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또한 노조법 2조는 노동조합의 설립 요건, 조직 형식, 운영 규정 등에 관한 기본적인 정의를 담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노조의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으로 인정받기 위해 충족해야 할 요건이 까다롭거나, 특정 유형의 종사자를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해석이 유지되면서 노조 설립권이 제한된다. 이러한 문제는 ILO 협약이 지향하는 ‘모든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라는 원칙과 상충된다.

 

노조법 3조(손해배상 제한)는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하였을 경우 그 행위자에게 민사상 책임을 지우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합법적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성’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법원의 해석도 보수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실제 노동현장에서는 쟁의행위가 법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컨대 파업이 일부 절차상의 흠결이나 범위의 제한으로 인해 정당성을 부정당하면, 해당 파업에 참여한 노동조합이나 조합원들은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기업들은 이러한 법적 한계를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노조의 파업이나 쟁의행위를 사전에 억제하거나 중단시키는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법 구조는 노동조합과 근로자가 실질적인 단체행동권을 행사하는 데 심각한 제약을 가하며, 이는 ILO가 반복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부분이다. ILO는 한국의 손해배상 청구 관행이 국제 기준에 맞지 않다고 보고, 노조법 3조가 본래의 취지와 달리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국제 기준과 현행 노조법 간의 괴리는 한국 노동정책의 주요한 개선 과제로 남아 있으며, 이를 해소하지 못할 경우 노동권 보호 수준은 국제 사회에서 계속 낮게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ILO 권고와 국제적 압박

 

대한민국은 2021년 ILO 기본협약 87호와 98호를 비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법은 여전히 ILO가 제시하는 국제 기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ILO는 매년 정기적으로 각국의 이행 상황을 검토하며, 한국 정부에 대해 “모든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결사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거듭 권고하고 있다. 특히 손해배상 남용이나 과도한 가압류와 같은 노조 활동 억제 장치는 국제 노동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지적한다. 이러한 권고는 단순한 외교적 권고를 넘어, 무역협정이나 국제 노동 기준 평가에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제 노동계는 한국의 법·제도 개선 속도가 더디다고 평가하며, 특정 사건이나 판결이 ILO 협약 위반 여부를 둘러싼 논란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또한 ILO 권고는 EU, 미국 등 주요 교역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인권 및 노동권 기준과 연계되어 국제적 압박 요인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ILO의 지적이 지속될 경우,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의 노동환경 리스크를 투자 결정에서 고려할 가능성이 커지고, 국제 NGO나 인권단체의 비판도 거세질 수 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노동권 보호 수준과 신뢰도에 직결되는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향후 과제와 국제 신뢰 확보

 

노조법 2조·3조 문제는 단순히 국내 노동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약속한 ILO 협약을 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법적 구조가 지속된다면, 글로벌 기업과 국제기구로부터의 압박과 신뢰 저하가 불가피하다. 향후 과제로는 근로자와 사용자 개념을 국제 기준에 맞춰 확장하고, 쟁의행위 관련 손해배상 청구의 남용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ILO와의 정례적 협의를 통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노동기준을 국내 정책에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는 노동권 보장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국제 신뢰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결론

 

ILO 기본협약의 핵심 취지는 모든 노동자에게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한국 노조법 2조·3조의 문제는 이러한 국제 기준과 괴리를 해소하기 위한 필수적 과제이며, 이를 해결하지 않을 경우 노동기본권 보호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신뢰 확보에도 한계가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