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측이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정계선, 이미선 재판관에 대해 스스로 탄핵심판 심리에서 빠져야 한다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윤 대통령 측은 이들 재판관이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이유로 회피를 촉구했으나, 법조계에서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24조에 따르면, 재판관의 제척(除斥) 및 기피(忌避)는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객관적인 사정이 있어야 한다.
제척 사유는 △당사자와의 친족 관계 △사건과 관련한 대리인·증언·감정 등의 역할 수행 등으로 한정된다. 기피 신청 역시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객관적 사정”이 필요하며, 동일 사건에서 2명 이상의 재판관을 기피할 수 없다.
회피는 재판관 스스로 판단하여 재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윤 대통령 측이 제기한 논리는 주관적 주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 측은 문형배 재판관이 더불어민주당 인사들과 SNS에서 교류하고, 특정 유튜브 채널을 팔로우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이는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 표현과 관련된 사항으로, 법적으로 회피를 강제할 수 있는 근거로 보기 어렵다.
이미선 재판관과 정계선 재판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선 재판관의 친동생이 ‘민변 윤석열 퇴진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배우자가 특정 법무법인에 근무한다는 사유는 개인의 독립적 판단과 무관한 사항이다. 정계선 재판관 배우자의 정치적 활동도 본인의 심리 공정성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헌재, 윤 대통령 측의 정계선 재판관 기피 신청 기각
헌재는 앞서 윤 대통령 측이 제기한 정계선 재판관 기피 신청을 기각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단순히 주관적 의혹만으로는 부족하고, 합리적이라고 인정될 만큼 객관적인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신청인이 문제 삼는 것은 재판관과 본안 사건 청구인의 관계가 아닌, 재판관 배우자와 청구인의 대리인 중 1인의 관계”라며 “친족 관계 등이 아니고 재단법인의 이사장과 재단법인 소속 근로자 내지 구성원의 관계에 불과하므로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객관적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한 정 재판관의 인사청문회 발언에 대해 “헌법 조문을 확인하고 판례를 언급하는 등의 일반적인 답변에 불과하다”며 예단을 드러냈다는 윤 대통령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이번 회피 촉구 요구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정치권과 언론이 재판관의 개인 성향을 획일적으로 단정하고 탄핵심판의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는 정치적 논란을 이유로 사법부 독립성을 침해하는 시도로 비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윤 대통령 측이 요구하는 3명의 재판관 회피가 이루어질 경우, 헌재는 남은 5명의 재판관으로 심리를 진행해야 하지만, 헌법재판소법상 결정 정족수(6명)를 충족할 수 없어 사실상 탄핵심판이 불가능해진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탄핵 절차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법적 근거 없이 특정 재판관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은 오히려 헌재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헌재가 윤 대통령 측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